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3월 7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수성구 2017. 3. 7. 08:38

2017년 3월 7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3월 7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복음 마태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처음 군대에 가면 훈련소에 입소를 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어떤 지를 잘 모르겠지만, 제가 입대를 할 때만 해도 조교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조교들의 말 한 마디가 거의 법이었지요. 아무튼 훈련소 입소를 하자마자 반드시 외어야 하는 것이 있다고 하면서, 복무신조와 군가의 가사가 적혀있는 종이를 주면서 저녁까지 무조건 외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소대원 모두가 외우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기합이 내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런데 한 동기 병사가 아예 외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벌써 다 외웠냐고 물어 보니, 자신은 머리가 나빠서 공부도 못했고 외우는 것은 전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몸으로 때우겠다고 합니다.

결국 이 동기 병사 때문에 다 함께 기합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교는 다시 다음 날까지 시간을 주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머리 나쁜 이 동기 때문에 또 기합을 받았을까요? 이 동기 병사는 자기 때문에 함께 기합을 받게 된 우리들에게 미안했는지 밤새 외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 친구는 그 종이의 내용을 다 외웠고 이런 자기 자신에 대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할 수 없다고 늘 포기했는데,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동기 병사의 모습처럼 우리들은 “할 수 없어.”를 말하면서 하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이는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다며 “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주님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도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자신이 필요한 것만 반복해서 계속 말하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시지요. 이 기도의 핵심은 용서에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우리가 먼저 용서할 때 우리 잘못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많은 기도를 하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그렇다면 과연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 용서가 어렵다고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일까요?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닐까요? 용서를 통해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용서할 수 없다면서 그 큰 선물을 스스로 걷어차는 것은 아닐까요?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용서를 통해서만 제대로 된 기도를 주님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엘리잘 벤 주다).


성공회 강화성당입니다. 현대식 건물이 아닌 것이 특이하죠?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알프레드 디 수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너무도 유명한 시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정작 이렇게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사랑할 때도. 일할 때도, 삶을 살아갈 때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는 없겠죠?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봅시다!


읍내에서 저녁먹고 산책하다가 보게 된 입간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