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사는 이야기

천당 각설이|―······…·

수성구 2013. 10. 5. 06:04

천당 각설이|―·· 

 

 

 

 인터넷 기사 글 입니다.

 

 

천주가사라는 장르가 있다.
천주교의 교리를 우리 전통 문학의 가사(歌辭) 형태를 빌어 노래한 것이다.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조선 정부의 박해 아래 있었던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노래이다.
미사를 통해 성가를 부를 수 없었고, 신부와의 접촉도 사실상 불가능했던 시절,
천주교 교리는 가사의 형태로 구전되었다.
19세기 말 서구 미사곡과 성가들이 들어온 이후까지도, 천주가사는 계속 불리었다.
1930년대까지 천주가사가 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몇몇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노래로밖에 들을 수 없다.
민중 계층에서 구전된 노래라 일정한 제목을 갖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신도들은 천주가사를 “천당 노래”라고 흔히 불렀다고 한다.
그 노래들 중에서 눈에 띄는 노래가 “천당각설이”라고 불리는 노래이다.
경상도에서 천당각설이, 십계풀이, 십계, 천당노래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이 노래는 각설이타령의 곡조에 천주교 교리를 풀어 가사를 붙인 것이다.
거지 노래와 천주교 교리의 결합.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결합이다.
천주교인이 천대받았던 조선 후기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천주교 교리 내용을 일부터 십까지의 숫자풀이에 흥미롭게 담은 노래이다. (이해 안되는 대목도 약간 있다.)
한국의 민중적 기독교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이라는 복잡한 말을 붙여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일자나 한자 들고보니 일구월심 원하던 마음 천당진복이 제일이라
이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만민의 영혼을 구하려고 이 세상에 네려셨네
삼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삼위일체 교리배워 삼구전장에 나아가세
사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사사성경을 많이읽어 성규사규를 잘 지키세
오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오상경을 볼 때마다 통곡오단을 묵상하세
육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육신의 정욕을 그만두고 영육한 영혼을 양육하세
칠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칠십구위 복자성인 칠고칠락을 위하여서 성신의 칠은을 받으셨네
팔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팔십이상 구노인이 노잠신공을 열심히 배워 진복팔단을 묵상하세
구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구품천신이 마귀되어 구령길을 방해하네
십자나 한자나 들고보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오주예수 생각하여 천주십계 잘 지키세
산덕으로 배를 모아 망덕으로 닾을 달고 애덕으로 노를 저어 천당지복으로 들어가세

 

(전정임, [초기 한국 천주교회음악] p. 50-58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