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휴가 전날 얼차려는

수성구 2022. 9. 24. 05:31

휴가 전날 얼차려는

9월 넷째주 연중 제26주일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루카16.19-31)

 

휴가 전날 얼차려는

(조철희 신부. 주문진성당 주임. 영동 가톨릭사목센터 관장)

 

고달픈 이등병 시절. 유일한 희망은 바로 첫 휴가였다.

고딘 훈련과 눈칫밥을 먹는 내무반 생활 속에서도 조금만 버티면 휴가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기다리던 휴가 날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부풀고 기쁘기 시작한다.

드디어 첫 휴가 하루 전.

고참이 말도 안되는 생트집을 잡아 얼차려를 주고 작업을 시킨다.

 

 

평소 같았으면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을 훔칠듯한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그 상황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오늘만 견디면 행복한 첫 휴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휴가는 오지 않았지만 이미 휴가의 기쁨은 고통의 한가운데에 머물고 있다.

 

 

드디어 행복한 휴가가 시작되었지만 그 시간들은 왜 그리 순식간에 지나가는지...

다시 부대에 복귀할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어머니가 마지막 저녁이라고 맛있는 소고기를 구워주셨지만 고기가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마음은 불안하고 입맛도 없었다.

내 몸은 편안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지만

마음은 그토록 두려워하는 군 생활의 고통에 머물고 있었다.

휴가 하루 전 군대에서 얼차려를 받고 있는 사람과 군대 복귀 전

소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일까?

 

 

부자는 호화로운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반대로 라자로는 배고픔에 시달렸고 심지어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런데 둘에게 차별 없이 공평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죽음이다. 라자로는 이승에서 고통스러웠지만 하늘나라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

반대로 부자는 살아서 호화로운 삶을 누렸지만 저승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

누가 더 행복 한 사람인가?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권력과 재물로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하룻밤이 지나면 그들은 자신이 누렸던 영화만큼 뜨거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신앙인은 첫 휴가를 앞둔 이등병처럼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잠시 고통을 받고 있더라도 살짝 웃어보자.

하룻밤만 지나면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해 주시는 영원한 위로가 기다리고 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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