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순교자 대축일] 민족 파스카의 신비

수성구 2022. 9. 18. 02:19

[순교자 대축일] 민족 파스카의 신비

민족 파스카의 신비

지혜 3,1-9; 로마 8,31-39; 루카 9,23-26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22.9.18.

 

전례의 취지와 말씀의 흐름 

오늘은 한국교회 순교자들을 통해 우리 민족을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에 감사드리며 우리도 순교정신을 계승하여 민족 복음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복자품에 올라 있었던 순교자 103위를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인들도 이분들을 공경하며 따르라는 뜻입니다. 

 

  의로운 이들은 하느님의 진리 안에 살기 때문에 비록 일시적으로 희생당할지라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 지혜서가 일러주는 이 말씀대로, 이 땅에서는 이 진리를 믿는 이들이 많이 출현했습니다. 지정학적 위치상 대륙과 해양 사이에 자리잡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는 전쟁이 잦았고, 외적이 쳐들어 올 때마다 의인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멀리는 을지문덕과 강감찬 그리고 이순신을 비롯해서 구한말의 의병과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 등 의로움의 가치를 지키려던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출현했습니다. 가까이는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국민들,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당시에 자발적으로 동참한 시민들, 국정농단을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고자 추운 날씨에도 평화시위를 벌인 촛불시민들도 의인들의 반열에 들었습니다. 특히 이 촛불시위는 서양에서는 물론 우리 주변의 민족들의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민주주의의 모범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종교심이 남다르다고 하지만, 의로움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전통 또한 남달랐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의로움을 위한 희생의 가치를 다른 어느 것보다도 높이 두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당신께서도 몸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야말로 그 어떤 환난이나 역경에서도, 심지어 박해를 받을지언정 포기할 수 없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이런 전례 취지와 말씀의 흐름에 비추어, 한국교회를 이끌고 계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향후 전망에 대해 다섯 가지로 묵상한 바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느님께서 한민족을 아시아의 동방으로 불러내심: 노아의 홍수 이후에 그 후손들은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창세 10,32). 우리 한민족은 아시아의 산악지방을 거쳐서 해가 뜨는 동쪽으로 옮겨오다가(창세 10,30) 아시아의 맨동쪽인 만주와 한반도에 자리잡았는데,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반만년 전이었습니다. 노아의 유훈대로 우리 조상들은 맨 먼저 돌로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고 그 제사에서 계시받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는 문명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이 자리잡은 땅에서는 유난히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자 엄청난 공력을 들여 세운 고인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한 건국신화들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이타적인 가치관을 담은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진리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제세이화’(濟世理化)의 문화로 살아온 겨레가 우리 한민족입니다. 민족사의 초창기부터 이 겨레를 이끄신 하느님의 선하신 손길 덕분에 우리 역사에서는 유난히 의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기도 하고, 단 한 번도 다른 민족을 노예로 삼거나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생만사와 세상만사를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선하신 손길에 대해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믿음을 지니고 살아왔고, 의로움의 가치를 숭상하며 평화를 사랑했습니다. 

 

2. 하느님께서 선비 이벽으로 하여금 교회를 세우게 하심: 이렇듯 마음속에 하느님께 향한 믿음을 간직하고 의롭게 살아오던 우리 민족에게 중국에 파견된 서양 선교사들을 통하여 그리스도 신앙이 전래되었습니다. 이들이 지은 한역서학서를 통하여 그리스도 신앙이 진리임을 맨 처음으로 알아본 이는 선비 이벽이었습니다. 

 

  그는 녹암 권철신이 가까운 남인 선비들과 함께 실학을 연구하던 강학회에 찾아가서 자신이 알게 된 서학의 이치를 소개했는데, 선비들의 동의를 받아 실학에서 서학으로 성격이 바뀐 강학회를 이끌면서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의 책, 특히 마테오리치가 지은 교리서 ‘천주실의’(天主實義)와 판토하가 지은 수양서 ‘칠극’(七克)을 검토해 보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스스로 한문으로 된 ‘성교요지’(聖敎要旨)와 한글로 된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 등을 지어 천주교 교리에 담긴 그리스도 신앙의 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만천 이승훈을 북경에 파견하여 세례를 받아 오게 함으로써 한국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이벽과 그의 동료 선비들은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또 자생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세례를 베풀어 교회를 세웠는데, 이는 세계교회역사상 처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끄신 오묘한 섭리의 작용이었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3. 하느님께서 강학회 선비들로 하여금 성사적 열망을 불러일으키심: 하느님의 이끄심은 문중의 박해 속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혼자서 일년 동안 한양 선비 천 명을 입교시킨 이벽이 천주교의 지도자임을 알게 된 그의 문중에서 박해를 하여 보름 동안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굶어죽게 만들어 세상을 떠나자, 남은 천주교 신자 선비 열 명은 이승훈을 중심으로 ‘가성직자단’을 꾸려서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며 미사를 드리고 고해를 듣는 성사활동을 더욱 조직적으로 함으로써 5년 동안 4천 명을 입교시켰으며, 양반 계층뿐만 아니라 중인과 상민에 이르기까지 신자층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교회법상 위법임을 통고받고서 ‘가성직자단’은 자진 해산하였고 곧 이어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게 되지만, 평신도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교리를 가르쳐서 세례를 받게 하고 또 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했던 열망이 놀라운 선교 성과로 이어진 현상 역시 기적적인 일입니다. 

 

4. 하느님께서 박해받는 신자들로 하여금 교우촌을 세우게 하심: ‘가성직자단’을 해체하라는 명령과 함께 전달된 ‘조상제사금지령’에 따라 모친상을 치룬 윤지충과 권상연을 필두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남인 선비들을 조정에서 축출하려던 노론 세력은 이참에 강학회 출신과 가성직자단을 이끌었던 교회 지도자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유배를 보냄으로써 막 태어난 한국교회는 쑥대밭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사상초유의 끔찍한 박해 소식을 북경 교구에 고하여 프랑스 군함의 무력시위로 진압해 보려던 황사영의 백서가 발각됨으로써 박해의 피바람은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조상제사를 금지한다는 바람에 기왕에 입교했던 양반 출신 신자들도 대부분 떠나가고, 중인과 상민 그리고 천민 출신 신자들만 남은 상태에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성령의 무슨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강원도 풍수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의 심산유곡마다에 교우촌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최양업 신부가 전국 교우촌을 돌면서 조사한 숫자만 해도 129군데였습니다. 이들은 천주교 신자로서의 본분이 기도생활에 있음을 알고 자유로운 기도생활을 하기 위하여 전답과 모든 재산과 사회적 지위 등을 모조리 포기한 채 자발적으로 가난한 생활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교우촌에서는 제도적으로 신분차별을 철폐한 갑오개혁보다 백 년 먼저 신분을 철폐하고 서로가 출신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가 믿음의 벗이라는 뜻으로 ‘교우’라고 부르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이 이룩되었습니다. 이 교우촌이 순교자 배출의 산실이 되었고, 한국교회의 뿌리이자 맥(脈)이 되었습니다.  

 

5. 하느님께서 배교자와 치명자 후손으로 하여금 순교정신을 계승토록 하심: 하지만 교우촌에 살던 신자들이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 열에 아홉은 잔혹한 고문에 못 이겨 배교했고 열에 하나 정도만 치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입술로만 배교한 이 신자들이 교우촌에 돌아와서는 배교한 행위를 자책하며 전보다 더 열심히 기도생활을 했다는 것이고, 치명자의 남은 가족들도 순교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더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박해가 종식되고 나서도 순교자를 현양하고 순교자 성월까지 제정하여 순교정신을 계승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는 전 세계에서 한국교회가 거의 유일합니다. 이 또한 앞선 오묘한 섭리에 못지않게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족의 파스카 과업: 한국교회가 백년 동안 박해를 받는 동안 관변 기록상으로 2천 명, 구전상으로 2만여 명이 순교했습니다. 한민족 역사상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통치 이데올로기에 맞서 저항한 사례는 여러 번 있었지만, 천주교 신자들처럼 양심과 신앙의 자유 그리고 만민평등과 남녀동등의 권리를 요구하며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고 평화적으로 저항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 백년 동안의 평화적 저항이 한민족으로 하여금 문명을 앞당겼습니다. 민족사의 초창기부터 겨레를 선하고 의롭게 이끌어주신 하느님의 손길이 뿌리가 되었다면, 천주교 신앙으로 무장하여 끝내 한민족으로 하여금 양심과 신앙의 자유 그리고 만민평등과 남녀동등의 권리를 실현시킨 박해와 저항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실현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박해가 종식된 지도 벌써 백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한민족은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배를 받았고, 그러면서 억울하게 나라가 갈라졌으며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루는 등 고통의 밑바닥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닥을 친 국운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고, 한국교회도 아시아의 여러 지역 교회에서는 물론 신앙의 본산이었던 유럽 교회마저 부러워하는 교세신장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한민족 특유의 선함과 의로움으로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류 현상처럼, 신장된 교세를 바탕으로 복음화 역량을 키워서 순교정신의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제는 한민족과 한국교회를,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시려는 귀한 도구로 쓰실 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민족 파스카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