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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수성구 2022. 9. 13. 04:16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누가 사람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앵’하고 태어나, ‘휙’하고 살다가, ‘억’하고 죽더라.”

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인생이 긴 것 같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얼마 전에 서울 신학교 동창 신부가 강화에 찾아왔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신학교 다닐 때의 사건 사고를 이야기했고, 또 재미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실컷 웃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30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에 하늘 같았던 교수 신부님들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지금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기다릴 때 가장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일한 것이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의연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최후의 순간에 어떤 기억을 떠올릴 것 같습니까?

고을 성문에서 두 행렬이 마주쳤습니다.

하나는 마을로 들어가는 예수님의 일행이었고, 또 하나는 마을에서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이었습니다.

죽은 이는 한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 과부는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유일한 희망을 걸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이제 그 아들마저 잃은 이 여인의 처지는 어떠했을까요?

당시는 여자 혼자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셨던 것입니다.

외아들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만히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죽음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죽음 앞에서 힘든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서 있는

외아들의 어머니를 가엾이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울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구원의 행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서도 주님께 대한 사랑의 기억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기억만을 만들면, 결국 후회를 남길 수밖에 없는 삶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주님께 대한 기억이 구원의 큰 선물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살아 있는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천운영).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