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따뜻한 하루

[후레자식]

수성구 2022. 9. 5. 06:56

[후레자식]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빠르다.

벼 이삭은 아직 여물지 않았고, 치솟는 물가에 수해까지 겹쳐 마음이 눅눅하다.

명절이면 그리워지는게 가족이다.

혈육을 만나려 고행의 민족 대이동을 감수한다.

하지만 요양 시설에 맡겨진 부모와는 명절을 함께 보낼 수 없어 그리움과 회한이 쌓인다.

떠나보낸 자식과 떠밀려난 부모 사이로 무심한 강물만 흐른다.

나이가 보태질수록 간절한 소망은 건강하게 살다가 요양 시설에 가지 않고 죽는 것이다.

이웃에 사는 지인은 3남매를 키워 장남은 가슴에 묻고, 남매는 결혼하여 멀리 떨어져 산다.
노부부가 함께 살다 얼마 전 남편을 요양 시설에 보냈다.

가벼운 치매에 거동이 불편해서다.

아내도 만성질환에 몸 가누기조차 어려워 선택한 현실적 대안이다.

어느 날 남편이 전화하여 “앞으로 설거지와 청소를 잘 할 테니 집으로 데려다 달라”라고 해 “마음이 착잡하다”라고 말한다.

듣는 이의 가슴도 먹먹해진다.
남의 일 같지 않다.

김인육 시인의 시 ‘후레자식’이 절절하게 떠오른다.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니를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애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못 죽고 사는 내 신세가 고려장이지/

어머니의 정신 맑은 몇 가닥 말씀에,// 폐부에 찔린 나는/ 병든 개처럼 허정거리며/

21세기 막된 고려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천하에 몹쓸, 후레자식이 되어/ 퉤퉤, 돼먹지 못한 개살구가 되어/’


코끝이 찡해진다.

시인은 “감각적인 언어유희나 리듬보다 생의 스토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싶다”라고 했다.

조근 조근 풀어내는 서사의 우직함에 진정성이 묻어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 정도로 병이 들면 어쩔 수 없이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노인 요양 시설에 가게 된다.

요양 시설에 가면 “집에서 쫓겨났다”라고 생각하거나 “자식들이 나를 버렸다”라고 인식하여 건강이 악화되기도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령사회의 비극이다.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요양 시설에 보내는 것은 불효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핵가족과 맞벌이로 부모를 모실 여건이
어렵다 보니 요즘은 시대의 흐름으로 간주하는 추세다.
누군들 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는 ‘후레자식’이 되고 싶겠는가.

노인돌봄 체계의 공공성 강화를 확대하여 가정에서 늙고 병든 부모를 보살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글 : 이규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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