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서품 날 받은 선물

수성구 2022. 8. 27. 05:03

서품 날 받은 선물

8월 넷째주 연중 제22주일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루카 14.1.7)

 

서품 날 받은 선물

(조철희 신부. 주문진 성당 주임. 영동 가톨릭사목센터 관장)

 

 

중3때 주임 신부님은 본당에 예비 신학생 모임을 만들고는

한달에 한 번 우리를 사제관에 모이게 하고.

지난달 기도하고 묵상하며 느낀 것을 글로 적어오게 했다.

어느 날 . 신부님이 나에게 토마스!

나는 네 글을 잘 모아 뒀다가 네가 서품을 받는 날 선물로 줄 거야..하셨다.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나의 아버지 신부님이 된 그분은

사제서품 받고 첫 미사 봉헌을 하던 날.

지난날 내게 약속하셨던 대로 내가 쓴 글을 모두 묶어 오셨고

미사 강론 중에 몇 개를 읽어주셨다.

성소를 걷는다는 것!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이 세상을 즐기고 싶고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며

나 자신을 위해 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눈 깜짝할 사이인 나라는 존재의 삶.

그 속에서 자기만을 위한다면 얼마나 위할 것이며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내려갈 수 있을 때까지 끝없이 낮아져야겠다.

이 세상에서 인정받을 것 다 받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즐길 거 다 즐긴다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광이 남아있겠는가?

아직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은 나다.

겸손할 줄 모르고 사랑 할 줄 모르고 참을 줄 모르는 토마스이지만

어느 날 나의 변화된 모습을.

주님과 하나 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예수 마리아 성심께 기도드린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사제들이 목에 힘을 주고 사제라는 이름으로 존경받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게다가 교회의 고령화 현실 속에서 어쩌면 나는 은퇴하는 나이가 되어도

본당에서 나보다 젊은 신자를 찾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중년 사제가 되어 이 세상에서 인정받을 것 다 받는다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광이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라고 생각해던

어린 날의 나를 돌아보니 숙연해진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불행해지고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행복해진다.

교우들에게 대접받는 사제가 아닌 교우들을 대접하는 사제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낮출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낮춰보자.

바로 거기에 하늘나라가 있기에..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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