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수성구 2022. 8. 13. 07:51

세상에 불을 지르러

8월 둘째주 연중 제20주일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49-53)

 

세상에 불을 지르러

(윤행도 신부. 마산교구 경화동성당 주임)

 

해군 도시 진해는 예전에 비해 군 시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거리에서 쉽게 군인들을 볼 수 있다.

본당에도 군무원이나 직업 군인으로 있다가 예편한 분들이 많다.

그리고 연세 많은 분들이 많다 보니 보수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강론 시간에 정치 관련 이야기는 자제하는 편이지만 꼭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최대한 균형을 유지하며 복음의 시각으로 소신껏 이야기한다.

 

 

공지 시간에 이야기를 꺼냈다.

선거는 끝났으니 나는 누구를 찍었다..라고 말하기보다

이제는 정부의 정책을 잘 살펴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반대도 하고

지지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청와대 이전에 대해서도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고.

소통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며.

멀쩡한 건물을 놔두고 납득할만한 이유나 근거도 없이

국민의 세금을 들여 새 건물을 계획한다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저와 의견이 다른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럴 때는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찬성하셔야 정치 발전에도

우리 국민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은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난하고 싶다면.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신부들이 온갖 위협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이땅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럴 때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속이 다 시원하다. 말씀 잘하셨다는 분도 있었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분들이 훨씬 많았다.

복음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복음의 가치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제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고민해 보게 된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성당에 나와 조용히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고 성체를 모시지만

기울어진 정치적 성향에 매몰되어 사회 정의에 눈감고.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신자이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하지 마라...는 말이 무섭고.

내 이야기에 마음 상한 신자들이 미사에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

사제로서 할 말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에 불 지르러 오신

방화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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