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작두가 사랑이다?

수성구 2022. 8. 9. 02:51

작두가 사랑이다?

작두가 사랑이다?

(박선정 헬레나 인문학당 달리 소장)

 

작두가 어떻게 사랑인지 얘기해줄게. 잘 들어봐

작두는 농촌 최고의 일꾼이던 소의 여물을 썰기 위한 도구였다.

몸값도 몸값이지만 소 없이는 일을 못하던 시절이라.

어른들은 자식보다 소를 더 챙겼다.

소는 배 둘레 크기만큼이나 많이 먹는다.

그러다 보니 소의 먹이를 구하고 저장하는 일이 농부의 또 다른 주요 업무였다.

가을에 수확한 볏단은 물론이고.

여름철 들판의 푸성귀를 보이는 족족 베다 말려서 겨울을 준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의 필수품이 작두다.

저녁 해 질 무렵이면 집마다 작두 누르는 소리가 담을 넘었다.

철커덕 턱. 철커덕 턱.

 

 

작두 일은 보통 작두에 풀을 앗아주는 사람과 그것을 눌러 자르는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일했다.

그 과정에서는 둘의 호흡과 리듬이 아주 중요한데.

작두가 내려오는 순간 그 안으로 풀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 일부가 조금이라고 들어가면

말 그대로 사달이 났다. 농촌에서는 손가락 마디 하나가 날아간

아이나 어른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을 대신해 우리 3남매를 키우신 할아버지는 아주 무서운 분이었다.

특히 오빠는 손자이기 이전에 지 몫을 해야 하는 일꾼이었다.

그러니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줄곧 야단을 맞았던 오빠는

60을 바라보는 지금에서도 여전히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할배. 억수로 억울하겠심더.

그 증거물 1호가 바로 작두다.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린 삼남매에게 작두 일을 거들게 하지 않았다.

 

 

 

아니. 작두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했다.

아차 실수라도 하는 순간 순식간에 어린 손가락이 잘려 나갈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고된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할아버지는 혼자서 묵묵히 헛간에 앉아서

그 많은 풀과 볏짚을 작두로 자르고 있었다.

단 한번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 본적이 없는 그 무뚝뚝하고 고집 센 할아버지는

그렇게 우리에게 당신도 모르는 사랑의 언어를 당신 몸의 언어로 보여줬지만.

정작 우리는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만 가지 다른 문법으로 된 사랑의 언어가 해석되지 못한 채

비 처럼 암호처럼 무의미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데도.

정작 내가 못 보고 못 듣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사랑이 죽은 세상이라며 한탄만 하고 있다.

당신과 나의 언어가 만나려면 `공감`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우린 그걸 할 줄 모른다.

그러니. 이제라도 사랑의 언어를 배우면 어떨까.

`작두`가 어떻게 `사랑`인지를 이해하는 기적 같은 언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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