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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성녀 마르가리타(마리나)

수성구 2022. 7. 20. 06:05

7월 20일 성녀 마르가리타(마리나)

 

St Margaret-ZURBARAN, Francisco de
c. 1631.Oil on canvas, 194 x 112 cm.National Gallery, London

축일 : 7월 20일
성녀 마르가리타(마리나)
Santa Marina (Margherita) d’Antiochia di Pisidia

Vergine e martire
안티오키아.동정, 순교자(304년경.연대 미상)

 

 



그녀는 원래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살던 어느 이교 사제의 딸이었으나, 어느 크리스챤 유모 밑에서 자라났다.  이리하여 크리스챤이 된 그녀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을 나와서 자기 유모와 함께 양을 치며 살았다. 그러나 그 지방의 장관인 올리브리우스가 우연히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와 높은 지식을 보고는,  자기 아내와 이혼하여 결혼코자 하였다. 그녀는 한발자욱도 움직이지 않자, 이윽고 크리스챤이란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용으로 변한 사탄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몰렸을 때, 항상 품고 다니던 십자가로써 극적으로 퇴치하였다. 그 후 그녀는 수많은 방법으로 고문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그녀의 용덕을 지켜보던 관중들이 마음으로 크리스챤이 될 각오를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참수치명하였는데, 실제로 그녀의 죽음은 그 지방에 수많은 개종자를 낳았던 것이다.

로마 순교록에는 "위대한 순교자 마리나"라고 기술한 뒤에 마르가리따의 행적이 나온다.
그러나 마르가리따가 보편적으로 알려진 이름이며, 쟌다크에게 계시를 준 성녀이다.






St Margaret-UNKNOWN MASTER, Bohemian
c. 1400, Brush, Chinese ink, red chalk, 21.4X14cm.Museum of Fine Arts, Budapest.

마르가리타라는 본명을 가진 성녀는 많다. 그들 중에 가장 선배이며 종가(宗家)라고 볼 수 있는 성녀는 바로 이 마르가리타이다. 그리스 동방정교에서는 이분을 대 순교 성녀로 공경한다.
우리 로마 서방 교회에서도 이분을 14명의 구난(救難)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성녀 아녜스, 체칠리아, 가타리나와 더불어 유명한 동정 순교 성녀로 받들고 있다.

그녀의 일생도 역시 초대 교회의 다른 성인 성녀와 마찬가지로 역사상 명확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녀의 고향은 소 아시아의 안티오키아라고 한다.
아버지는 우상숭배교의 제관인 에데시오였고, 어머니는 일찍 사망했으므로 마르가리타는 유모의 손에서 자라났다. 그녀가 신자가 된 것은 실로 이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유모의 힘이었다.

신자가 된 그녀는 태도가 돌변하여 아버지의 의심을 사게 되어 하루는 그녀가 개종한 데 대해 아버지의 심문을 받았다. 마르가리타는 바로 이때야말로 자기 신앙을 고백할 때라 생각하고 솔직하게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고백했다. 평소에 딸의 미덕을 사랑하던 아버지였지만 이러한 고백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사랑이 컸던 그만큼 그의 증오도 컸다. 그는 곧 딸을 집에서 쫓아냈다.
집을 나온 마르가리타는 유모와 같이 지낼 수 밖에 없었고, 높은 신분미었지만 유모와 같이 천한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며 하느님을 공경하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정부의 인사 이동이 있어 올리브리오하는 사람이 그 지방 지사로 임명되었다.
완강한 그의 아버지는 부녀지간의 애정도 버리고 그 딸 마르가리타를 가톨릭 신자라고 고발해 버렸다. 마르가리타는 곧 법정에 호출되었다.

마르가리타의 꽃과 같은 미모는 지사의 마음을 매혹시켜 그녀를 한번 본 지사는 감언이설로 그녀를 달랬다.
"그대는 노예의 몸인가 자유의 몸인가? 노예의 몸이라면 자유롭게 해 줄 것이고, 자유의 몸이라면 내 아내로 삼을 것이다." 그때 그녀는 "나는 자유의 몸이며 가톨릭 신자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사는 "가톨릭 신자라면 교를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형벌을 받을 것이다"하고 위협했다.
이런 위협으로 선뜻 마음이 움직일 마르가리타는 아니었다. 완강히 그의 요구를 차버렸다.
지사는 마치 모욕이나 당한 듯이 격분하며 마르가리타에게 갖은 고문을 가하고 어두운 감방에 가둬 버렸다.



평소에 마르가리타의 성덕을 증오하던 악마는 무서운 용으로 변모하여 나타나 그녀를 단숨에 집어삼키려 했다. 마르가리타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성호를 그으며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자, 그 용은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다. 마르가리타의 상본에는 흔히 그녀가 용의 머리를 밟고 십자모양의 막대기로 그 머리를 찌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곧 이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며칠 후 그녀는 다시 지사 앞에 끌려나가 갖은 형벌을 받았다.
마르가리타는 이 모든 고통을 잘 인내하고 마침내 목을 베여 그 깨끗한 생명을 하느님께 바침으로 자기의 신앙을 끝까지 지켰다. 확실한 연대는 모르나 이는 아마도 디오클레시아노 황제 때인 307년 경이었으리라.

많은 시인과 문인들이 박해의 광풍에 휩쓸려 사라진 꽃 마르가리타의 장렬한 최후를 아름다운 말로 그려냈으며, 각 지방에는 그녀에게 봉헌된 성당이 많이 건립되었고, 많은 부인들은 그녀를 수호 성녀로 삼아 영구히 그녀의 아름다운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