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너 어디 있느냐?

수성구 2022. 6. 20. 07:35

너 어디 있느냐?

 

6월 둘째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진리의 왕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것이다

(요한 16.12-15)

 

너 어디 있느냐?

(윤행도 신부. 마산교구 경화동성당 주임)

 

그리스도교는 `신비의 종교`라고 할 만큼 `신비`가 많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에서부터 성체성사의 신비. 하늘나라의 신비. 삼위일체의 신비 등등.

우리는 미사 때마다 신앙의 신비여..라고 노래한다.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이 절대신비요 궁극신비이시니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신비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신비라는 개념에 얼버무려 두리뭉실 넘어가려 한다면

그리스도교는 자칫 밀교의 대상이 되어버릴 수 있다.

신앙의 신비는 인간의 말로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어 보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믿는 이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고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신비 중 가장 심오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에 있어서의 신비이기에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나와 내 자신과의 관계.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아담이 죄를 지어 숨게 되자

하느님께서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하며 아담을 찾으신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하신 최초의 질문이 나에게도 던져진다.

`가롤로야. 너 어디 있느냐?

 

 

나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어디쯤 있을까?

그동안 내가 지은 죄를 생각한다면 아무 할 말이 없지만.

주님의 사랑이 그 어떤 죄. 그 모든 죄보다 크고 깊기에

그 사랑에 의탁하여 주님께로 나아간다.

다음으로 나는 내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가장 잘 알 수도 있지만 어쩌면 가장 모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나를 가장 많이 속인 사람이 바로 내 자신이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어야 나를 알 수 있다.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래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욕망에서 조금씩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나눔이다.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 재능등을 나누는 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동시에

성체성사의 은총을 사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상 세 가지 관계의 정립을 통해

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어렴풋하게나마 살아 가게 된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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