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5월 25일 성 베다 사제 학자

수성구 2022. 5. 25. 00:48

5월 25일 성 베다 사제 학자

St. Bede the Venerable, Priest, Monk, Scholar

 

축일:5월25일

성 베다 사제 학자

St. Bede the Venerable

St. Bede, Benedictine, Doctor,

San Beda detto il Venerabile Sacerdote e dottore della Chiesa

Monkton in Jarrow (Inghilterra) 672-673 - Jarrow, 25 maggio 735

Born:672 at Wearmouth, England

Died:25 May 735

Canonized:1899 by Pope Leo XIII

Father of English History

 

 

673년 위어마우스 수도원 근교에서 태어났다.

성 베네딕도 비스코프에게 교육을 받았고 수도원에 입회한 후 사제가 되어 가르치고 저술하는데 생애를 바쳤다.

교부들의 전승을 따르고 성서를 주석하는 신학 및 역사학의 저술을 남겼다. 735년에 세상을 떠났다.

 

성 베다의 임종에 대한 커버스트의 편지에서

(Nn. 4-6 PL 90, 64-66)

 

나는 그리스도를 보고 싶습니다.

 

예수 승천 대축일 전 화요일이 되었을 때

베다 형제의 병세는 악화되어 숨결이 매우 거칠었고 발은 약간 부어 올랐다.

그러나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온종일 우리에게 학습을 지도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이 저술하려는 것을 받아쓰게 하였다.

다른 여러 가지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습 과제를 지금 속히 배우십시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있을지는,

잠시 후 나를 지으신 분께서 데리고 가실는지 모르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가 자신의 죽음이 언제 올지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수면도 취하지 않고 감사 드리면서 그날 밤을 지새웠다.

 

수요일 아침이 밝아 오자 우리가 이미 시작했던 것을 지체하지 말고 끝마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아홉시까지 그일을 했다. 아홉시자 되자 그날 늘 하던 대로 유해 행렬을 했다..

우리 중 하나가 그의 곁에 남아 있었는데,

그는 베다 형제께" 스승님, 스승께서 받아쓰게 하신 그 책은 아직도 한 장이 더 남아 있습니다.

저희 질문에 계속 대답하시는 것은 무리가 되시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펜을 뾰족하게 깍고 나서 빨리 쓰시오."

그 형제는 성인이 지시하는 대로 했다.

 

오후 세시가 되자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옷장속에는 몇가지 선물, 후추가루, 수건 그리고 향이 있습니다.

빨리 달려가서 우리 수도원의 사제들을 모시고 오십시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은 비록 적은 것이지만 그분들게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사제들이 왔을 때 모두 모아 놓고 말씀하면서 각개인에게 자기를 위하여 미사와 기도를 바쳐 달라고 권고하며 간청했다. 그들은 기꺼이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들의 얼굴을 이 세상에서 얼마 더 보지 못할 것같이 생각된다고 말했을 때

형제들은 모두 큰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다음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모두 기뻐했다.

"나를 지으신 분의 마음에 드신다면, 지금 이 시간이 내가 존재하기 전

무로부터 나를 지어내신 분께로 돌아갈 때입니다.

나는 오래 살아왔고 자비로우신 심판관께서는 내 일생을 당신 섭리로써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왔으니 내 몸이 해체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갈망합니다.

내 영혼은 영광 속에 나의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보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감화를 주는 다른 여러 가지 말씀을 하면서 저녁이 될 때까지 이날을 기쁘게 보냈다.

 

내가 이미 말했던 윌버트라는 젊은 형제가 다시

"스승님, 아직도 쓰지 못한 문장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는 " 그 문장을 빨리 쓰십시오." 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젊은 형제가 "이제 다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자

스승은 " 그 말이 맞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손으로 내 머리를 받쳐 주시오.

내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도록 내가 즐겨 기도했던 성당을 향해 기대어 앉기를 정말 원합니다."

그리고 나서 방바닥에 누워 영광송을 외우기 시작하여 "성신께"를 외울 때는 숨을 거두었다.

그가 항상 하느님을 찬미하는 데 그토록 노력한 것을 생각하면 자기가 그리워하던 천국의 기쁨으로 틀림없이 옮겨 갔다고 우리는 믿는다.(가톨릭홈에서)

 

 

성 베다 사제의 「루가 복음 주해」에서

(Lib. 1,46-55: CCL 120,37-39)  

 

성모 찬송가

 

"그리고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이다.’"

주님이 그다지도 엄청난 전대 미문의 은총으로 나를 높여주셨기에 어떤 말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고

또한 마음의 가장 깊숙한 정감도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의 힘을 다 합쳐 감사와 찬미를 바치는 데 모두 소모해 버립니다.

내 모든 삶과 모든 정감과 모든 이해력으로 감사와 찬미 가운데 끝없으신 그분의 위대함을 관조합니다.

나의 태중에 시간 안에 육신으로 잉태된 구세주 예수님의 영원한 신성을 보고 내 영혼은 기쁨 속에 즐겨 뛰놉니다.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로다." 마리아는 여기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나이다." 라는 찬가의 시작 부분을 되돌아보시고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해주시는 영혼만이 마땅한 찬송으로 주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그와 함께 구원의 약속을 받은 이들에게

함께 찬송하라고 다음과 같이 응당히 요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와 함께 주님을 찬송하라. 우리 함께 그 이름을 높여 드리자."

 

자기가 알고 있는 주님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찬송하는 것과

그분의 이름을 거룩히 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분은 당신이 지니신 유일하고도 가장 큰 능력으로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고 당신이 지어내신 만물에서 멀리 떨어져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심을 아니 잊으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도다." "이스라엘은 내 종이기에 나는 그를 사랑했노라." 는 호세아서의 말씀에 따라 주님은 복종 잘하고 겸손한 이스라엘을 구하시고자 뽑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아름다운 말로 "주님의 종" 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낮추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고, 예언자와 더불어 "보라,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도다."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하여 영원히 우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바로다."

마리아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이 아닌 영신적 후손을 말해 줍니다.

즉 아브라함으로부터 육신을 따라 내려오는 할례를 받은 이들만이 아니라 할례를 안 받았어도 아브라함의 신앙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 역시 할례를 받기 전에 믿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구세주의 오심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즉 약속의 자녀들에게 약속되었습니다.

그들에 대해 바울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약속에 의한 상속자들입니다."

 

주님의 어머니도 요한의 어머니도 자기 자녀들의 탄생을 예언 중에 미리 전하는 것은 옳습니다.

죄가 여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축복도 여인으로부터 비롯되고,

한 여인이 속임을 당해 잃어버린 그 생명이 서로 다투듯이 예언하는 이 두 여인으로 인해 되찾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홈에서)

 

 

베다는 살아 있을 때부터 공경을 받기 시작한 몇 안되는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는 신앙과 학식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공의회는 그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도 교회 안에서 그 책들을 공적으로 읽도록 지시할 정도였다.

베다는 어린 나이에 자로우의 성베네딕토 수도원 원장의 보호에 맡겨졌다.

학덕과 성덕을 겸비한 수도자들의 가르침을 받게 된것은 이 천재에게는 행운이었으며,

따라서 그가 성인이 되고 뛰어난 학자, 어쩌면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당시의 모든 학문 즉 자연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원리,천문학,산수,문법,교회사,

성인들의 생애, 그리고 특별히 성서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30세에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19세에 부제품을 받음-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배우고 쓰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는 필사(筆寫)한 수 많은 책 외에도 자신이 직접 45권이나 되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 중 30권은 성서 주석에 대한 것이다.

 

왕과 다른 귀족들, 심지어는 교황 세르지오 1세까지도 열심히 그를 찾아왔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의 수도원에 계속 머물러 있고자 했다.

단 한 번 그는 요크의 대주교가 운영하는 학교에 가르치러 가기 위해 몇 달 동안 수도원을 떠난 적이 있었다.

 

베다는 그가 좋아하는 기도인 영광송을 바치면서 735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그의 ’교회사’는 저술 역사의 기술과 학문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가 죽었을 때에 그리스도교의 황금시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서방의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벗어난 북쪽의 야만족들에게 적응할 준비를 하던 목적을 달성했다.

이러한 적응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베다는 교회 생활에 있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베다의 ’교회사’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지만 다른 모든 학문,

특히 성서에 관한 그의 저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사순절에 그는 성요한의 복음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고 죽는 날까지 그것을 보충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나누어 주는"이 저서는 오늘날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베다의 그리스도교인다운 생활과 죽음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모든 발견들은 그 정도인 것처럼 보인다."(’교회사’의 편집인 C.플뤼머)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웨어마우스에서 태어난 그는 성 베네딕도 비스코프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영국 쟈로우이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생을 그곳에서 자신이 표현한대로 "신성을 찬양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지냈다.

자연주의자이며 역사학자, 시인이었던 그는 또한 훌륭한 신학자였다.

 

간단한 설교로써 성서를 쉽고도 감동적으로 깨닫게 하였다.

그분의 시 중에서는 동정녀 성 마리아를 찬양하는 매우 아름다운 시가 몇 편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슬기로운 지도자들은 밝은 하늘처럼 빛날 것이며 대중을 바로 이끈 지도자들은 별처럼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다니 12,3).

이 구역의 예언은 성 베다에 대해서도 적용될 것이다.

그는 베네딕토회의 수도자로서 4세기부터 5세에 결쳐 게르만 민족이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 침입해

찬란한 문화의 꽃을 뿌리 채 멸망시키려고 했을 때 이를 보호해

뒷날 서양 문명의 귀중한 모태가 되도록 한 것은 주로 그의 공로 덕분이라 할 것이다.

또한 그는 당시의 신학과 기타 일반 학문의 방면에 있어서도 큰 공적을 남겼다.

 

그는 672년 영국 웨어마우스 쟈로우의 세인트 피터와 세인트 폴 수도원 근처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이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베네딕토 비스콥 원장과 체오프리드의 지도 아래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베다는 매우 급속히 지식이 진보해 교사인 수사까지 놀라게 했으나

그의 경건한 신심도 이에 못지 않게 뛰어나 모든 덕을 닦는데 극히 열심했다.

이리하여 19세로서 일찍이 부제가 되고 나서 신학 연구에 전념하기 11년만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나

 그 뒤에도 연구를 계속해 마침내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성인이라는 평판은 이미 그 수도원에서부터 영국 전토에 퍼져 주교, 국왕과 같은 권력자도 그와 교제하며

그의 예지와 덕행의 빛이 충만한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더욱이 그의 말이 일층 더 권위를 지니게 한 것은 그의 성스러운 생활인데, 일반 사제, 수도자들도

그의 고결한 모범을 우러러보고서는 엄숙히 정장을 하고, 스스로 반성해 개과천선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St. Bede, Benedictine, Doctor

 

성인이 무엇보다 힘을 쓴 것은 성서 지식의 보급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보급을 위해 거의 모든 성서의 주해서를 저술했다.

또한 여력을 기울여 물리, 천문, 식물 등의 방면에서도 박학한 지식을 쌓아 많은 저서를 발간했고,

동양 문화를 서양에 소개하는 일에도 크게 공헌한 바 있었다.

이상을 보고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베다는 직접 선교 사업으로 진리를 수많은 나라에 전한

성 보니파시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와는 달리 주로 문필로써 사람들 사이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

 

끊임없는 노고 때문이었는지 위의 질병과 호흡 곤란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담당하고 있던 신학생에게 하는 강의를 중단하지 않고 공동 기도에도 출석할 뿐 아니라 한밤중에도 다윗의 시편을 외우며

주님께 기도드린 때가 많았다고 한다.

병약의 몸인 그가 주님께 불리어 그의 찬란한 공적의 보수를 받기 위해

천국으로 떠난 것은 735년 5월 26일 마침 주님 승천 축일이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면서도 겸손했으며 영국사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1899년 교황 레오 13세가 교회 박사로 선언했고,

성 보니파시오는 베다를 일컬어 ‘성령의 빛이자 교회의 빛’,‘우리 스승이신 복자 베다’라 했다.

그는 단테의 천국 편에 나오는 유일한 영국인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St. Bede’s Tomb

Photo ⓒ The Dean and Chapter, Durham Cathedral.

 

시편 제 103 (102)편1)

 

[다윗]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라. <104,1.35>

내 안의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라.

그분께서 해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130,8>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41; 출애 15,26; 욥 42,10>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내시고 <107,20>

자애와 자비로 네게 관을 씌우시는 분.

그분께서 네 한평생을2) 복으로 채워주시어

네 젊음이 독수리처럼 새로워지는도다. <이사 40,31>

주님께서는 정의를 실천하시고

억눌린 이들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는도다. <146,7>

당신의 길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리셨도다. <로마 3,2>

주님께서는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86,15; 145,8; 출애 34,6-7; 야고 5,11>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는도다.

끝까지 따지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며 <이사 57,16; 예레 3,12; 에제 20,44; 요엘 2,13; 요나 4,2>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시는도다.

오히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그분의 자애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굳세도다. <36,6; 47,2; 이사 55,9>

해뜨는 데가 해지는 데서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하시는도다. <미가 7,19>

아비가 자식들을 가엾이 여기듯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니 <145,9; 예레 31,20>

우리의 됨됨이를3) 아시고 <욥 10,9>

우리가 티끌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로다. <90,3>

사람이란 그 세월4) 풀과 같아 <90,5-6; 102,12; 이사 40,6-7>

들의 꽃처럼 피어나지만

바람이 그를 스치면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아내지 못하는도다. <90,6; 욥 7,10; 8,18>

그러나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100,5; 출애 20,6; 루가 1,50>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머무르고

당신의 정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당신의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신명 33,9>

당신의 규정을 기억하여 실천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하늘에 당신 어좌를 든든히 세우시고 <11,4>

그분의 왕권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도다. <22,29>

주님을 찬미하라, 그분의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힘센 용사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그분의 모든 군대들아 <148,2>

그분 뜻을 실천하는 신하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그분의 모든 조물들아, <145,10>

그분 왕국의 모든 곳에서.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라. <다니 3,57>

 

1. 시편 103은 ‘개인 감사시편’의 요소가 들어있는 ‘찬양시편’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감사 찬양시편’이라 부르기도 한다. 입문 4, (1)의 (가)와 (2)의 (다) 참조.

2.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본디 ‘치장, 장신구’를 뜻하는 낱말이지만, 여기에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칠십인역은 “원의”, 시리아어역은 “몸”, 아퀼라와 예로니모는 “치장”, 타르굼은 “노년”으로 옮긴다.

3. 이 낱말은 (2행의 “티끌”도 참조) 창세 2,7에 묘사된 하느님의 창조를 상기시킨다.

4. 직역: “그의 날들.”  

(새번역성서. 가톨릭홈. 한국천주교 주교회의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