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손 도손 나눔

소요유(逍遙遊)적 삶!

수성구 2022. 5. 12. 04:08

● 소요유(逍遙遊)적 삶!


★ 장자 사상의 중요한 특징은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서 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기계적 소모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장자는 우리에게 인생에 있어서 ‘일’을 권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풍’을 권한 사람이다. 

우리는 ‘일’하러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성공’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과거 생에 무엇을 잘했는지 모르지만 하늘로부터 삶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 우주에는 아직 삶을 선물로 받지 못한  억조창생의 ‘대기조’들이 우주의 커다란 다락방에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당신과 나는 이 삶을 하늘로부터 선물 받아, 이렇게 지금 지구에 와 있지 않은가!
 
삶을 수단시하지 마라. 
삶 자체가 목적임을 알라. 
이 삶이라는 여행은 무슨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이 여행 자체를 즐겨라.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인생이란 소풍이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소풍을 보내면서, 단지 열흘짜리 휴가증을 끊어 주신 건데, 
하느님이 사는 중심우주와 우리가 사는 외곽우주가 서로 흐르는 시간대가 달라 
그것이 백 년이 된 것 뿐이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눈꼽만큼도 없다.
 ‘소(逍)’자는 소풍간다는 뜻이고, ‘요(遙)’자는 멀리간다는 뜻이며, 유(遊)자는 노닌다는 뜻이다.
즉, ‘소요유’는 멀리 소풍가서 노는 이야기이다. 
‘소요유(逍遙遊)’는 묘하게도 글자 세 개가 모두 책받침 변(辶으)로 되어 있다. 
책받침 변(辶)은 원래 ‘착(辵)’에서 온 글자인데 ‘착’이란 그 뜻이 ‘쉬엄쉬엄 갈 착(辵)’이다.
그러니 ‘소요유’를 제대로 하려면 내리 세 번을 쉬어야 한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고! 

★ 걷는 것은 축복(祝福)이고 철학자(哲學者)가 된다.

우리들 느리게 걷자, 
뛰지 말고 날지 말고 걷자, 
계속 걷자.

규칙적인 운동으로 걷는 운동이 매우 효과적이다.
‘건활’(健活건강을 위한 활동)은 생명 유지의 필수다.

프랑스 문학가 ‘싸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했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Harris, 1989)’는 걷기가 인간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 

주위환경과 자신과의 관계를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장자크 루소(Rousseau)’는 《고백록》(2012)에서 걷기를 통해 많은 것을 이뤘다고 하면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고 했다.

사실 숲길을 걷을 때마다 숲은 반응하게 마련이다.
걷고 또 걸으며 자연과 대화할 때 남다른 감동과 건강을 안겨 준다.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길에는 주인이 없다.

걸어가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생각하며 명상하며 조용히 걸어가는 것은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우리나라에서 한참 불고 있는 걷기 운동은 자연과 소통하는 행위로 우리 생활 문화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건강 전문가들에 의하면 햇볕을 많이 받으며 걷는 것이 좋다고 한다. 
햇볕을 받으면서 걷고 조깅하면 세라토닌 호르몬이 많아진다고 한다.
특히 노인으로서는 자주 걸으면서 머리 들고 하늘을 보는 것도 건강의 비결이다. 
서산에 지는 해를 원망하기보다 장엄한 빛을 보면서 충만한 에너지를 느껴보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나는 대로 걸으면서 대지로부터 전달되는 기운을 느껴보는 일이다.

걷는것이 축복이다.

완전히 홀로 걸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수있다. 
산길을 오르다가 작은 암자를 만나거든 예불하고 마음을 다시 씻어내는 것이다. 
걸으면 고요와 평화가 오고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고전이 된《월든》(Walden, 2008)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Thoreau, 1817~1862)’의 ‘산보론’
(Walking)에서는 걷는 것에 대해 성지를 찾아나서는 순례에 비유한다.
걷는 다는 것은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도(道)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늙어갈수록 많이 걷자. 
진정한 나를 찾아 적어도 하루에 30분~1시간을 걸어보자.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침저녁마다 땀이 약간 날 정도의 속보로 걷는 운동을 한다.

노령 층의 걷기는 어떤 소식을 알고 달려가는 발걸음이 아니지 않은가? 
무상 무념으로 걸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