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진짜 산다는 것

수성구 2022. 4. 16. 04:31

진짜 산다는 것

4월 셋째주 주님 부활 대축일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1-12)

 

진짜 산다는 것

(마진우 신부. 대구대교구 초전성당 주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성당에 온다.

헌데 성당에는 레지오 단원들에게 다단게를 소개하며 물품을 파는 사람도 있고.

일은 하지 않으면서 감투를 끝까지 고수하려는 사람도 있다.

뒤에서 누군가를 험담하는 모습도 보이고

울며 겨자먹기로 기도 바치며 숙제처럼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생기가 사라져 처음 설레었던 마음이 이제는 지칠대로 지쳐 버린다.

활기를 찾아 성당에 왔는데 성당엔 무언가 죽어 있는 모습들만 가득한 느낌이다.

밖에서 보면 성당은 잘만 돌아가고 있는데

성당에 나오는 이들의 영혼은 활력을 잃어간다.

무엇이 살아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새를 죽여서 박제를 하면 그 화려함은 살아있겠지만

그 새의 생명력과 노랫소리는 이미 죽어버린 것이다.

신앙은 영호을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율법만 살린 채 영혼을 메마르게 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이다.

죽은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여전히 지금도 살아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미사 때에 받아 모시는 성체 안에 생생히 살아계셔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죽은 물고기가 물에 둥둥 떠내려가듯이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따면 우리의 영혼은 살아 있는 분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내려가는 것일 뿐이다.

겉으로 보면 움직이니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물고기는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우리 또한 숨 쉬고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의 향기가 드리워져 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

여기에서 우리는 한 단계 높아진 영역 진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사람들은 살아계신 분을 보지 못하기에 계속 무덤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무덤에는 그분이 살아 계신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들만 있을 뿐.

그분은 이미 그곳에 계시지 않고 당신이 뜻하는 바를 실천하고 계신다.

 

 

살아있는 주님은 어디 계실까?

너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를 찾아가면 그에게 여전히 살아계신다.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고회 안에서만 팽팽 돌아가는 종교활동의 굴레에 매여 있지말고

세상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이들을 찾아가자.

그 일을 실천적으로 할 때에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이 땅에 묶인 가치들을 조금씩 내려놓자.

그럴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

그것이 주님 부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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