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좋은글

마음 속 푸른 이름

수성구 2022. 4. 4. 07:28

마음 속 푸른 이름

 

 

아직 이르구나 내 이 지상의 햇빛, 

지상의 바람 녹슬었다고 슬퍼하는 것은, 

 

아직 이르구나, 내 사람들의 마음

모두 잿빛이 되었다고 탄식하는 것은 

 

수평으로 나는 흰 새의 날개에 내려 앉는 

저 모본단 같은 구름장과

우단 같은 바람 앞에 

 

제 키를 세우는 상수리나무들

꿈꾸는 유리 강물, 

햇볕 한 웅큼씩 베어 문 나생이 잎새들 

 

마음 열고 바라보면

아직도 이 세상 늙지 않아 

외출할 때 돌아와 부를 노래만은

언제나 문고리에 매어 둔다 

 

이제 조그맣게 속삭여도 되리라

내일 아침에는 이 봄에 못 피었던

수제비꽃 한 송이 길 옆에 피고 

 

수제비꽃 옆에

어제까지 없던 우체국이 하나 새로 지어질 것이라고,

내 귓속말로 전해도 되리라 

 

오늘 태어나는 아이가

내일 아침에는 

주홍신을 신고 우체국을 갈 것이라고.

 

 

 

- 이 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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