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22년 3월 7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수성구 2022. 3. 7. 03:48

2022년 3월 7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25,31-4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지금은 아동학대라고 하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실험이겠지만, 13세기 독일의 프레드릭 2세는 아이를 대상으로 실험했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완벽히 차단해서 키우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언어를 말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아주지 않고 말도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말을 할 나이가 되기 전에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끔찍하다고 할 수 있는 비윤리적인 실험이었지만, 신체적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친밀하고 행복한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우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육체적으로는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도, 감정적으로는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안에서만 그럴까요? 이렇게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하느님 앞에 서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오늘 복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오시는 사람의 아들은 여기서 모든 백성을 심판하는 임금으로 나타나십니다. 그 앞에 세상을 살아온 모든 백성이 서게 되고, 각자 믿음과 그 실천에 관하여 심판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임금이신 주님은 자신에게 하는 것보다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을 자신에게 해 준 것으로 여기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도 이렇게 강조합니다. 오늘 독서의 레위기는 이렇게 말하지요.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 19,15)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레위 19,17)

우리 주변에는 우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런 이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곧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자신과 이루는 모든 관계는 나를 살게 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 관계를 끊으려고 하십니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이런 식을 끊어버리면 이 세상에서도 그리고 주님 앞에서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관계 중에 하나를 끊으면 또 다른 관계를 끊는 것도 쉽게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계속 관계를 끊다 보면, 심지어 주님과의 관계도 끊게 됩니다.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에게 어디로 가라고 하실까요?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갖는 것이다(칸트).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