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딱 보면 알아!
2월 넷째주 연중 제8주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수 있을것이다
(루카6.39-45)
난 딱 보면 알아!
(조철희 신부. 주문진성당 주임. 영동가톨릭사목센터 관장)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난 누구든지 딱 보면 알아!
남을 판단하는데 있어 우리는 너나 할것없이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남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보면서도 정작 자신의 모습은 온전히 보지 못한다.
아니.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해 피하고 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 말씀처럼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기 어렵다.
그 들보는 내 스스로 보고 싶지 않고 부정하고 싶은 나의 어두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어두운 면은 나의 의식이 보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정작 나는 볼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 눈에만 보이게 된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여진 티는 사실 나의 열등한 측면.
내가 의식적으로 감추어 놓은 나의 그림자이다.
누군가가 나의 결점을 비난할 때 마음속에 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면
바로 그순간 내가 의식하기를 거부했떤 그림자가 보여서이다.
지금 내 주변에 주변에 특별히 피하고 싶은 사람.
이유없이 화가 나는 사람. 말투며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인정하기 싫겠찌만 그 사람은 나와 똑 닮은 사람이다.
내 무의식안에 꼭꼭 숨겨놓았던 나의 열등한 측면이 그에게 크게 투사되어
그를 볼 때마다 보기 싫은 나를 보게 되니 부끄럽고 불편해 화가 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대인 관계에서 버럭 화부터 내는 것은
나의 아픈 곳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너 나이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너는 왜 이 모양이니?
딸의 자유분방함이나 마음에 안드는 행동들에 심하게 화를 내거나
통제하려는 어머니는 자신이 젊은 시절 누리고 싶었지만.
꾹꾹 눌어왔던 자유의 욕구를 무의식중에 딸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딸 역시 어머니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며 어머니를 원망하게 된다.
서로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각자 짊어져야 할 책임을
상대방의 탓으로 떠넘기게 되는 것이다.
많은 교우들이 고해성사를 볼때 자신을 성찰하기보다 남을 열심히 성찰한다.
내 눈의 커다란 들보는 언급도 안 하면서 남의 눈의 티는 자세히 언급하려 한다.
나를 깊게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것을 남의 책임으로 떠넘기려 할 때
진정한 용서와 평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고해성사는 나의 열등함과 어두운 것들을 하느님 사랑안에서 끌어아는 성사이다.
내가 보고 싶은 나의 모습만 바라보지 말고
나의 부족한 그림자까지도 두려움 없이 바라보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깨달아야 다른 사람 눈의 티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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