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글방

서로서로 입춘立春, 여립汝立

수성구 2022. 2. 13. 04:39

서로서로 입춘立春, 여립汝立



2022.2.7. 전주치명자산 평화의전당 시국미사 중 김인국 신부님 강론

한국이 <전 세계 코로나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던 세계가 <대선 문항> 하나를 놓고 끙끙대는 한국을 보며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신앙인다운, 그리고 민주사회의 시민다운 선택에 보탬이 될까 하여 몇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사람들 일으켜 세울 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입니다.

전주에서 가까운 진안에 자유 평등의 대동세상을 꿈꾸던 사람이 살았습니다. 임금은 하늘이 내고, 땅 위의 모든 것이 임금의 것이라 왕조시대에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주인이 따로 있으랴.” 했던 선비, 너 여汝자에 세울 립立, 정여립 선생이었습니다. 개인적 입신을 포기하는 대신 ‘여립’, 내가 너를 세우련다 했던 분이니 참으로 별 같은 존재였습니다. 엊그제가 봄을 일으켜 세우자는 입춘이었는데, 자빠진 사람들을 우뚝 세우려는 ‘여립’이나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따뜻한 봄을 세우는 ‘립춘’이나 같은 뜻입니다. 기왕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이런 좋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좋겠습니다.

임금 선조는 정여립을 필두로 조선 최량의 인재 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유명한 기축옥사입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나라 지킬 재목들을 모조리 없앴으니 나라가 거덜 났던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조선이 아주 기울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대의 별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벽, 이승훈, 정약용 같은 천주교인들이었습니다. 조정은 그 별들도 해치웠습니다. 결국 조선은 망해버렸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하지 않습니까. 임금이 하던 일이 지금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살릴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는 권능을 신중하게 사용합시다.

둘째, “공사 구분을 못하는 사람은 안 된다” 입니다.

어수룩한 시절에는 회사의 연장이나 자재, 인력 등을 빼돌려서 집안일을 해결하던 사람들이 숱했습니다. 그 덕에 대통령까지 해먹은 자도 있었는데, 아직도 그 시절의 수법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두환은 평생직장이었던 군대의 병력을 빼돌려서 광주학살을 벌였고, 그때의 무력시위로써 집권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비슷한 일이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검찰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자마자 ‘검찰 병력’을 동원해서 법무부장관의 가족을 상대로 잔인한 무력시위를 하고, 그걸 마치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강직 검사의 경력인 양 꾸미고 부풀려 집권을 탐하는 중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의 진실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전두환의 철권통치에 타격을 가했던 우리 사제단은, 고문과 조작을 일삼던 안기부의 유령이 지금은 검찰청 어느 구석에 똬리 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 눈이 잘못 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평생 사람 잡는 일에 몰두했던 이가 과연 사람들 살리고 사람들 구하는 데 최상의 적임자일까요?

셋째, “자꾸만 속으면 속는 사람도 잘못이다” 입니다.

민주 시민이라면, 더군다나 깨어 있는 신앙인이라면 대중매체가 띄우는 특정인에게 마음을 주기 전에, 누군가에 대해서는 그토록 저주를 쏟아 붓는 것인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1980년 당시 신문이란 신문마다, 방송이란 방송마다 시민학살의 장본인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모로 전두환의 닮은꼴인 후보를 힘껏 선전하는 중입니다. 이른바 강자동맹을 위한 립 서비스는 그들 평생의 업이었으니 새삼 나무랄 것도 없고, 문제는 기 무슨 ‘레기’, 기 무슨 ‘더기’라는 자들에게 부화뇌동하는 민심입니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자가 나쁜 놈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 세 번 속으면 그 때부터는 공범이라고 했습니다.

넷째, “뒤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입니다.

성경은 종이었던 자들이 결국 종이 되고 말았다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자들이 용케 나라를 세웠으나 종당에는 바빌로니아로 종살이하러 끌려갑니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하느님이 신신당부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기어코 퇴행을 선택하였습니다. 대선의 결과에 따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돌아가거나 할 것입니다.

정권교체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민주당은 시민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집권세력이 되었기에 절실함이 없었습니다. 그들로서는 촛불 흉내나 내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면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응징하지 못한 책임은 촛불시민들에게도 있습니다.”(황대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에서 오늘 당장 시민들의 책무는 해방 이후 친일세력을 포함하여 기득권 그룹이 총집결한 이 상황을 이겨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고비만 넘으면 대한민국은 정치를 포함해서 단숨에 30년은 발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지난 오년 간 우리는 지겹도록 보았습니다. 대통령의 임명으로 검찰총장이 되었으면서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고/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면서 책상을 쾅쾅 내려치는 오만방자한 풍경을/ 대통령이 공약한 정책을 법정으로 끌고 가면서 싱긋 웃던 감사원장의 얼굴을/ 제아무리 여야가 합의해도 들어줄 수 없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던 기재부장관의 요지부동을/ 초반에는 눈치 보는 척하다가 대통령 임기가 막판에 이르자 엉터리 판결을 줄줄이 쏟아내던 법원의 이중성을. 국민을 바보 천지로 여기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산시킨 자들에게 권력을 넘겨버리고 새로운 무엇을 기대한다는 게 과연 이성적인 행동일까요?

다섯째, “세월호의 진짜 선장을 찾아야 한다” 입니다.

지금 우리는 노인,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든 세대가 세월호라는 공동의 배를 타고 항해하는 중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선장에게 가장 필요했던 자질은 상황판단능력이었습니다. 그 배의 선장은 양심도 없었지만 결정적으로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무속 논란의 장본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 판단해서 결단하고 책임질 일을 ‘누군가’에게 묻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둘째, ‘남’에게 묻고 남의 권위에 의지했던 것도 어느 쪽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는 점에서 그는 자격 미달입니다. 원죄의 주인공 아담의 귀책사유는 운명의 진로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뱀이 시키는 대로 따른 점이었음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여섯째, “뽑힐 사람을 뽑아야 한다” 입니다.

당선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뽑으면 뽑힐 사람, 즉 자기를 내던져서 전체를 위한 밑거름이 되어줄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잘못 뽑아놓으면 그가 우리를 뽑아 버릴 것입니다. 자기를 바칠, 기꺼이 뿌리 뽑혀나갈 정도의 사람이라야 높은 산을 깎아서 골짜기를 메우는 억강부약을 조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밑지는 장사는 안 된다” 입니다.

오늘까지 우리가 이룬 성취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가진 것이 어느 정도인지/ 지킬 것이 얼마나 많은지/ 키우고 키우면 얼마나 대단한 미래가 열리는지 아예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가졌으면 지켜야 하고/ 지키면서 키워나가야 흥하고 번창하는 것입니다. 애써 지키고/ 기껏 키워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그만 두자. 이제는, 가질 것도/ 지킬 것도/ 키울 것도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미련하고 비겁한 짓입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룬 놀라운 성과에 감사하고/ 원망하기보다는 서로 격려하면서/ 지킬 것 끝까지 지키고/ 키울 것 다 키워냄으로써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쳤던 어른들에 대한 도리를 다합시다.

마치겠습니다. 겨울을 힘들게 보낸 이웃들에게 가장 먼저 봄의 축복이 찾아들기를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지인의 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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