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감동의 스토리

사마천의 빛

수성구 2022. 1. 25. 05:26

사마천의 빛

사마천(司馬遷, BC 145년 ~ 86년)
한무제 시대의 역사가.

 

지난달에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를 살펴보았다. 《사기》는 기원전 90년경에
쓴 것인데, 다양한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사회의 구조와 변화에 대하여 일관된
해석을 제시한 최고의 역사책으로 꼽힌다. 130권이라는 방대한 책을 홀로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는 고관이나 대학자가 아닌 평범한 관료였기에 더욱 그렇다.
어떻게 하여 그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사마천에게 역사책을 쓰는 것은 운명이었던 것 같다. 부친은 궁중에서 의례를 담당
하는 관료였는데 역사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부친은 그의 영특함을
알아보고는 철저하게 공부를 시켰고, 그가 20살이 되자 어렵게 여행 자금을 마련
하여 곳곳을 둘러보도록 하였다. 사마천은 그때부터 역사적 현장을 직접 보고 관련
인물들의 일화를 수집하면서 식견을 길러 나갔다.


그는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아 일하면서 궁중에서 각종 문서와 책을 보고 역사 서술
방법을 연구하였다. 이전의 역사책들은 제왕의 연대기로만 편찬되어 밋밋하였다.
고심 끝에 그는 여러 인물의 행적, 사회 제도와 경제 등을 함께 서술하는 기전체 방식을
창안하였고, 그 후 이 방식은 역사서의 기본 방식이 되었다. 나아가 건달, 점쟁이, 유세객
등 다양한 하층민 인물까지 뽑아서 생생하게 쓰려 하였다. 이런 구상이 끝나자 그는
42세에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 하였다. 그러나 5년 가까이 지났을 때 엄청난 불행이
닥쳤다.
흉노족 토벌을 위해 출전하였던 이릉 장군이 항복하는 일이 생겼는데, 이릉이 승리
하였을 때는 앞다투어 칭찬한 대신들이 갑자기 이릉을 비난하였다. 사실 이릉이
패배한 것은 아무런 후속 지원이 없었던 상부의 전략 착오 때문이었다. 사마천은 대신
들의 비겁함을 참을 수 없었고, 홀로 이릉에게 잘못이 없다고 변호하였다. 성격이 급한
한무제는 이에 격분하여 그 자리에서 그를 감옥에 가두었고, 사형과 궁형 중 선택을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궁형은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인데, 사대부들은 궁형 대신
사형을 택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궁형은 본인이나 집안에 극한의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뜻밖에도 궁형을 택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제가 이런 모욕을 견디며 더러운 흙속에서 뒹굴면서도 목숨을 버리지 않았던
까닭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함이었으며, 죽은 후에
제 문장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몸이 풀려난 후 다시 집필을 시작하였다. 몇 년 후 한무제는 미안했는지
그에게 다시 관직을 주었지만 그는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과 다름없었다.
"백 살이 되더라도 저의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에도 아홉 번 창자
가 뒤틀리는 아픔을 느낍니다. 집에 있으면 멍하니 무엇인가를 잊은 듯하고, 집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끄러움을 생각할 때마다 등골에 땀이
배어 올라 옷을 적십니다."라고 쓸 정도였다. 이런 모멸감 
속에서도 그는 집필을 이어
나갔다. 이런 경험 때문일까? 《사기》에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유달리
많다. 인물 112편 중 57편이 비극적 운명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이 부분에
특히 분노와 격정에 찬 문장이 많다.


항우와 우미인이 적에게 포위된 채 마지막 밤을 보낼 때, 항우가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좋을꼬?"라며 눈물 흘리는 부분은 역사서를 뛰어넘어 가장 유명한 가사가
되었다. 또한 각 인물 전기의 끝에 자신만의 해석을 내리는데, 그 사람의 정수를
파악하여 공과(功過)를 고르게 평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에게 삶의 흐름과 결말을
생각하도록 하였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지 않았어도 《사기》는 최고의 역사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비극을 깊이 있고 일관된 역사의식
으로 승화했고, 이로 인하여 《사기》는 더 깊은 예지를 품은 책이 되었다. 한 사람의
비극이 다른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삶에서 부딪치는 역설 중 하나 아닌가.


그가 삶을 계속하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써야 한다는 운명적 힘이
그를 끌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를 통하여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이치를
밝히고자' 세웠던 뜻이 그의 빛 아니었을까.




윤재윤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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