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수성구 2021. 8. 28. 02:19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섶 다리로 냇물을 건너야 했던

마을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야 했던 동네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붉어지게 하는

아잇적 큰 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 가느라고

감 따는 아이들 목소리도 옥타브가 높아가고

장마 끝 무너지다 남은 토담 위에 걸터앉은

몸 무거운 호박덩이

보름달보다 밝은 박덩이가 뒹구는

방앗간 지붕에는 빨간 고추밭

 

어느 것 하나라도 피붙이가 아닐 수 없는 것들

열린 채 닫힌 적 없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헛기침 사이사이 놋쇠 재터리가 울고

안마당 가득히 말라 가는 곶감 내음새

달디 단 어머니의 내음새에 고향은

비로소 콧잔등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 이름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고

허물어져 가는 것은 모두가 눈물겨울 것

비록 풍요로움일지라도 풍성한 가을열매일지라도

추억처럼 슬픈 것, 슬퍼서 아름다운 것,

아름다워서 못내 그립고 그리운 것

그렇게 고향은 비어가면서

속절없이 슬픈 이름이 되고 있다.

 

허물어져 가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 떠난 빈 집을 붉게 익는

감나무 저 혼자서 지켜 섰다.

가지마다 불 밝히고 귀 익은

발자욱소리 기다리고 섰다.

 

-『유안진(柳岸津) 클라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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