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섶 다리로 냇물을 건너야 했던
마을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야 했던 동네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붉어지게 하는
아잇적 큰 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 가느라고
감 따는 아이들 목소리도 옥타브가 높아가고
장마 끝 무너지다 남은 토담 위에 걸터앉은
몸 무거운 호박덩이
보름달보다 밝은 박덩이가 뒹구는
방앗간 지붕에는 빨간 고추밭
어느 것 하나라도 피붙이가 아닐 수 없는 것들
열린 채 닫힌 적 없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헛기침 사이사이 놋쇠 재터리가 울고
안마당 가득히 말라 가는 곶감 내음새
달디 단 어머니의 내음새에 고향은
비로소 콧잔등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 이름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고
허물어져 가는 것은 모두가 눈물겨울 것
비록 풍요로움일지라도 풍성한 가을열매일지라도
추억처럼 슬픈 것, 슬퍼서 아름다운 것,
아름다워서 못내 그립고 그리운 것
그렇게 고향은 비어가면서
속절없이 슬픈 이름이 되고 있다.
허물어져 가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 떠난 빈 집을 붉게 익는
감나무 저 혼자서 지켜 섰다.
가지마다 불 밝히고 귀 익은
발자욱소리 기다리고 섰다.
-『유안진(柳岸津) 클라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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