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글방

“걱정 말아라, 내가 너를 찾을테니.”

수성구 2021. 5. 7. 04:52

“걱정 말아라, 내가 너를 찾을테니.”

 

수도복은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는 옷입니다.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옷을 입고 다니는 덕분에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평생 결혼도 안하고 혼자 사신다면서요?” 신자가 아닌 분들이 주로 하는 질문입니다. 대신 “어떻게 수녀원에 들어가셨어요?”라는 물음은 보통 신자들 중 낯을 익힌 분들이 주로 하는 질문입니다.

 

종종 같이 사는 수녀님들과 모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길을 걸어와 지금 여기에서 함께하고 있음을 나누는 시간은 늘 흥미롭고 신비롭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소설처럼 극적이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짧은 수필처럼 담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이면 백 다른 색깔을 지닌 고유한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분은 모든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많은 이가 그렇듯, 저또한 신앙 귀한 줄을 몰랐습니다. 신자라는 이름만 겨우 걸고 있다가 결국 냉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막혀하는 엄마의 다그침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엄마보다는 점잖고 조용한 분이시라 그랬는지, 아니면 제가 너무 멀리 달아나는 바람에 절 잊어버리셔서 그랬는지, 아무 불편 없이 한 해 두 해가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잘 서 있다고 여기던 제가 맨바닥에 철퍼덕 넘어지는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자존심은 꺾이고 자존감은 흔들렸습니다. 다친 마음만 들여다보며 혼자서 쪼그라들던 중에, 억지로 등 떠밀려 피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피정 둘째 날 깜깜한 새벽, 성경 한 구절만 쥔 채 밖으로 내몰렸습니다.

 

침묵 중에 말씀과 함께 머물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그루터기가 있는 근처 숲으로 가 앉았습니다. 가볍게 나뭇잎 뒤척이는 소리밖에 없는 새벽 어둠 속에 혼자 있자니, 정말 세상에서 내쳐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들 가버리고 혼자 남겨져 버릴 것 같아서, 또 그렇게 남겨져도 아무도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불안했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 문득 누군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서움이 아니었습니다. 훈훈한 기운에 싸여있듯 편안한 느낌이었습니다. 살그머니 손을 뻗으면 곁에 있는 한 존재에 손끝이 닿을 듯 했습니다.

 

멀리서 해가 떠오를 때까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는 새벽 해돋이 때문에, 아니면 막 깨어나는 숲의 기운 때문에 일어난 감흥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게는 그 새벽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귀하고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아무리 멀리 가 있어도 내가 널 찾으마. 난 네가 어디에 있어도 널 찾을 수 있단다. 그러니 너무 멀리 와 버렸다고, 오래 전에 돌아가는 길을 잊어 버렸다고 무서워 하지마라. 어디에 있든 내가 널 찾으마.”라고 말씀 하시는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있든 저를 찾아내시는 하느님! 그런 하느님이 계시는 한 저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 신명희 엠마 수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