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교리상식

천주교 신자로서 유아세례는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수성구 2021. 3. 23. 05:55

천주교 신자로서 유아세례는 꼭 해야 하는 건가요?

 

[가톨릭 교리 상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천주교 신자로서 유아세례는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우리 집 애완동물이 세례를 받게 하고 싶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 천주교 신자로서 유아세례는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종종 어떤 분들은 ‘아이가 나중에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하시며, ‘종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싶어 하십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주제를 교육으로 치환하여 놓고 보면 답은 좀 더 분명해집니다.

그 어떤 부모님도 아이가 교육을 받을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방관에 가까워질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신앙 없이 키우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이미 ‘신앙은 중요하지 않다’는 부모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물론 개인적인 결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그 가능성은 현실로 개화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홀로 만들어나가는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과 함께하면서 시작되고 자라나게 됩니다.

유아 세례는 바로 이러한 신앙의 공동체성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유아 세례 예식서도 이러한 의미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예식서는 어린이에게 직접 질문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현행 예식서(2018년 발행)는 부모에게 묻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이 같은 질문은 유아 세례가 어린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모가 신앙으로 수행해야 하는 부모의 몫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맥락에 따라, 이번에 주신 질문에 대한 답을 교회법 조항 그대로 분명하게 전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부모는 아기들이 태어난 후 몇 주 내에 세례받도록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교회법 867조 1항)

 

* 우리 집 애완동물이 세례를 받게 하고 싶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동물은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아니한 모든 사람만이 세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교회법 864조 1항).

 

애완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께는 섭섭하게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세례를 받는 이유는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교회법 849조).

그런데 교회에서 말하는 죄는 엄밀히 말해, 사람만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죄란 진리와 이성과 양심을 거스르는 잘못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49항). 자유의지 없이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동물의 행동을

교회가 말하는 죄의 범주로 재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가령, 애완동물이 이유 없이 주인을 향해 짖거나

이웃 주민을 깨물었다고 해도, 교회에서 가르치는 의미의 ‘죄’를 지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례를 못 받는다는 가르침이 동물들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 있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세례는 받을 수 없지만,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동기 신부가 애완동물 축복식을 하겠다고

주보에 냈더니, 수많은 종류의 진귀한 애완동물들이 성전에 속속 모여들어 장관을 이뤘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온갖 동물과 더불어 하느님께 기쁘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1년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서울주보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