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진정한 이웃

수성구 2021. 1. 17. 06:16

진정한 이웃

오늘 복음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인데,

루카 복음 10장 26절의 '이웃'이라는

희랍어 단어는

'플레시온'(pllesion; neighbour)이다.

유다적 어법을 따르면,

'이웃'이란 '동질성을 가진 집단'

이란 뉘앙스를 나타낸다.

유다인들은 이 단어를 같은 동족,

같은 종교권의 사람들, 혹은 같은

유다인 집단을 가리키며 사용했다.

배타적인 바리사이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을

이 단어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예수께서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진정한 이웃이 되어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율법학자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라고 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대해 J.Jeremias는

율법학자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가

그들이 무시하고 사람 대접하지 않는

사마리아인이란 말을 입에 담기조차

꺼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애덕을

실천하는데 있어 출신 성분, 고향,

종교, 피부색, 언어, 이념, 사상이

왜 거론되어야 하는가?

 

예수님이 만약 우리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겠는지?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로 번역된

희랍어 원문은 현재 명령법이다.

희랍어의 현재 명령법은

지속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강한 명령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이제 율법학자에게 남은 것은

현학적 '이웃' 개념의 토론이 아니라

단순하고 명료한 '자비'의

실천만이 남는 것이다.

 

여기서 '자비'로 번역된

'엘레오스'(elleos)는 '불쌍한 자나

고통받는 자를 향하여

그들을 구제하고자 원하는 친절

혹은 호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고

그리스도께서 피로써 구속한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생존'이라는 말 앞에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 다른 이유를 대면 안된다.

 

지구상의 65억 중에 13억 이상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고,

전기가 없는 곳도 허다하며,

물이 없어 온갖 병균이 득실대는

빗물받은 웅덩이의 물을 배가 아프고

병걸리는 줄 알면서도 마셔야하고,

먹을 게 없어 더러운 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먹어야 하며,

배변속에서조차 먹을 것을 찾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께 가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같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같은 형제,자매가 아닌가?

 

나는 좁은 한국 땅을 떠나

먼 나라 여기 미국에까지 와서도,

출신 학교와 출신 고향, 출신 군

전우회를 따지는 대한민국 사람들,

더군다나 피부색이 다르고,

못 배우고, 게으르고 못 산다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독특한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있는지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

 

 

도대체 저 유다인 율법학자하고

우리하고 다를 게 무엇인가?

누가 아프리카 땅에서 까만 피부로

가난한 곳에서 태어나 못 배우길

원했는가? 누가 영어 잘못하는 나라인

일본의 식민지가 되길 원했는가?

 

이곳 사막에 살면서 습기가 없어

좋지만 너무 더우니까 기운이 없고

힘이 빠지고, 밥 맛도 없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느낌이 자꾸 든다.

날씨가 더우니까 그런 것이다.

그러니 더운 날씨에서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다 치부할 수가 없다.

 

나는 내 앞에서 출신 고향과 언어와

피부색과 경제적 부와 학력과

정치적 이념과 성향을 이야기하며

편가르기 하고, 극단으로 가면서

흑백 논리를 펴는 사람들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향하며 영원히 살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다.다만

이곳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진실과 정의, 평화와 사랑의

나라가 서도록 하느님 말씀따라

노력할 뿐이며, 이 땅이

그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도록

우리의 자유를 시험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지구는 언젠가 사라지며

우리가 천년 만년 살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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