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축일:2월 16일 성 오네시모 순교자 /니코메디아의 성녀 율리아나 동정 순교자 /복녀 필립바 마레리

수성구 2014. 2. 16. 17:04

축일:2월 16일 성 오네시모 순교자 /니코메디아의 성녀 율리아나 동정 순교자 /복녀 필립바 마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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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2월 16일

성 오네시모 순교자

St. onesimus, M

Sant’ onesimo Martire

Frigia (Asia Minore), Primo secolo dopo Cristo

Died:c.90

Canonized:Pre-Congregation

Name Meaning:helpful; profitable

 

 

필레몬에게 보낸 사도 바오로의 편지에 의하면(10절~18절),

오네시모는 프리지아의 골로사이에서 살던 필레몬의 노예였다.

그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에 바오로를 만났고,

세례를 받았으며, 사도 바오로의 영적 아들이 되었다.

 

또한 바오로는 그를 필레몬에게 되돌려 보내면서,

오네시모는 이제 노예가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도록 요청한다.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말한 그대로 자신도 행동했고,

또 "성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로서" 인정하였다(골로사이 4:7~9).

 

성 예로니모에 의하면, 그후 오네시모는 말씀의 설교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교까지 되었으며,

로마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여 로마 순교록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축일:9월30일.게시판670번,1394번.

 

 

필레몬 1,10-18

10  내가 갇혀있는 동안에 얻은 내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의 일로 그대에게 이렇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11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와 또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 보냅니다. 그것은 내 심장을 떼어 보내는 셈입니다.

13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갇혀 있는 터이니 그를 내 곁에 두어 그대를 대신해서 내 시중을 들게 하려고도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14  그러나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대가 선을 행하는 것이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15  그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16  그러나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교우로서 그대와 같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는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교우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보든지 주님을 믿는 신앙의 견지에서 보든지 그대에게야 그가 얼마나 더 귀중하게 생각되겠습니까?

17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는 것처럼 그를 맞아 주시오.

18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그 책임을 나에게 지우시오

 

골로사이 4,7-9

7  내 모든 사정은 디키고가 여러분에게 알려 줄 것입니다.

이 사랑하는 형제는 주님을 위해서 나를 충실히 도와 함께 일하는 일꾼입니다.

8  우리 사정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또 여러분을 격려하려고 나는 이 사람을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9  그리고, 오네시모도 딸려 보냅니다. 그 사람도 성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로서 여러분의 동향인입니다.

그 두 사람이 여기 사정을 여러분에게 알려 줄 것입니다.

 

그는 프리지아의 골도사이에서 살던 필레몬의 노예였다.

그는 바울로 사도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바울로를 만났고, 세례를 받았으며 사도 바울로의 영적 아들이 되었다.

또한 바울로는 그를 필레몬에게 되돌려 보내면서 오네시모는 이제 노예가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도록 요청했다.

그 후 오네시모는 말씀의 설교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교까지 되었으며 로마에서 돌을 맞아 순교하여 로마 순교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랑의 증거자 필레몬

대 사도 성 바오로가 소아시아 지방을 순회하며 프리기아에서 전교할 때 그 도시의 부자이며 인품이 훌륭한 필레몬이란 사람도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그의 신앙은 참으로 모든 이에게 모범이 될 만큼 열렬한 바가 있었고, 아직 교회를 갖지 못한 그곳의 신자들에게 자기의 저택을 집회의 장소로 제공해서

미사에도 참여하고 기도도 바치는 등 신앙생활에 매우 열심이었다.

또한 그의 아내 아피아도 자선과 박애(博愛)사업에 노력하며 고용인에게 대해서도 양순하고 선량한 주인이었다.

그러므로 성 바오로가 그를 "우리의 사랑하는 협력자"(필레 1, 1)라고 존경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필레몬의 노예 중에 오네시모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하루는 주인의 물건을 훔친 후 바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도중에 우연히도 성 바오로를 만나게 되어 간곡히 그의 잘못에 대한 훈계와 교회의 도리에 관한 설교를 듣고 나서 완전히 개종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련한 노예일지라도 죄를 통회케 하고 행복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측량할 수 없는 그의 섭리를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후 오네시모는 성 바오로의 지도하에 로마에서 전교하고 충실히 은사를 돕게 되어 대 사도로부터

"충실한 나의 사랑의 형제"혹은 내 "믿음의 아들"(필레 1, 10)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오네시모는 신앙을 가진 후로 이전에 범한 절도죄를 크게 통회하며 그에 대한 보속을 어떻게 할까를 스스로 생각도 하고 성 바오로에게 문의하기도 했다.

이를 듣고 성 바오로는 일단 그를 필레몬에게 용서를 청하러 보내기로 결정하고 온정으로 상대를 용서해 주기를 간청하는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에게 주었다.

그 내용은 신앙의 형제가 된 오네시모의 전죄를 요서해 줄것과 이를 형제처럼 받아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온전히 개인적인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과 일꾼의 관계에 대해 그리스도적 해결을 보여 준 귀중한 서간으로서 영광스러운 성서로 취급받고 있다.

 

오네시모는 이 편지를 가지고 프리기아로 돌아와 주인 필레몬을 만나 지은 죄를 진심으로 사과했다.

원래 인자한 필레몬은 기꺼이 그의 죄를 사해 줄 뿐아니라,

그의 개종을 기뻐하면서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며 형제로서 환영하고 은사 바오로의 소식도 물으며,

더욱 그를 섬기도록 타이른 후 다시 대 사도의 슬하로 보냈다. 그때 그의 마음은 아무 거리끼는점도 없고 무한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로마로 다시 돌아온 그는 성 바오로를 다시 만나 이번이야말로 자기 일생을 온전히 바칠 것을 결심했다.

로마의 많은 노예들 중에서 점차 그리스도교 신자가 많이 나와 비참한 처지에 있는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큰 위로를 받게 되고

모든 어려움을 참아 나아가게 된 것은 오네시모의 활약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오네시모가 성 바오로의 따뜻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정당한 신앙을 옹호하며 그릇된 설을 훈계한 중요한 서간을 위탁받고 골로사이 교회에 파견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요한 임무를 완수한 오네시모는 결국 바오로에게 주교품을 받고 주님의 백성을 돌보고 있었지만,

95년 도미시아노 황제때 일어난 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의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주인 필레몬에게 용서를 청하고 있는 오네시모

 

’유익하다’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진 오네시모는 골로사이에 있는 필레몬의 집에서 몸 붙여 살던 노예였다.

당시의 노예들은 대부분 고대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또 전쟁 포로이거나 노예 상인들이 팔아 넘겨 노예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로서 재산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므로 주인은 노예를 마음대로 물건을 사고 팔듯이 매매할 수가 있었다.

주인은 심지어 노예를 사형시킬 권한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필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그는 왜 자신이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수밖에 없는지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특히 철이 들면서부터는 자신의 처지와 주변의 환경이 견딜 수 없도록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하루 빨리 노예의 상황을 벗어나기 만을 고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모든 환경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인생은 더욱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더욱더 세상에 반항적으로 바뀌어갔다.

언제 어떻게 자신 속에 있는 세상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폭발할지 모를 정도였다.

 

주인 필레몬은 부유한 사람이었는데 사도 바오로를 통해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필레몬은 그의 집을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로 사용하도록 내어놓을 정도로 열심한 신자였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와는 친구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필레몬의 노예 생활을 하던 오네시모는 드디어 어느 날 주인으로부터 도망을 쳤다.

당시 노예들이 도망할 때는 주인의 재산을 도둑질하거나 주인의 가족들을 살해하는 일이 흔했다.

오네시모도 주인 필레몬의 재산을 도둑질하여 도망을 갔다. 도망친 노예가 행여나 붙잡히기라도 하면 죽을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오네시모는 주인의 재산을 훔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머나먼 로마로 갔다. 로마는 당시 세상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오네시모는 로마가 자신이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우연하게도 사도 바오로는 로마의 감옥에서 죄수의 몸으로 갇혀 있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복음을 전하고 증거했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오게 되었지만 오히려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고 있었다.

로마의 감옥에서도 그는 비교적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때 사도 바오로와 오네시모가 로마의 감옥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오네시모는 주인의 집을 도망친 종으로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을 섭리하신 분은 하느님이셨다.

 

사도 바오로는 오네시모에게도 주님의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모두 다 믿지는 않는다.

오네시모는 사도 바오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인으로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오네시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심으로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다. 살아오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고 꿈도 꾸지 못했던 오네시모였다.

사도 바오로는 오네시모의 사람 됨됨이와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오네시모에게 자신과 함께 주님의 복음을 선포할 것을 권고했다.

 

“이보오, 오네시모. 나와 함께 주님의 일을 하지 않겠소?”

오네시모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를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선생님, 저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개 종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오네시모는 사도 바오로에게 자신이 주인의 집에서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노예이며 그간의 사실을 고백했다.

 

“오네시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신분의 차별이 있을 수 없소.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기를 원하고 있소.

당신이 무익한 존재로 살았으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고 나서 유익한 존재가 되었소. 당신은 충분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오. 나를 믿고 따라주겠소?”

 

오네시모는 신앙의 스승인 사도 바오로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에 오네시모는 사?바오로 곁에서 충실한 협조자로 능력을 한껏 발휘했다.

“당신의 옛날 주인 필레몬은 나의 친구요. 이제 내가 편지를 한 장 써 줄 것이니 가지고 돌아가시오. 그리고 그에게 빚진 것은 내가 대신 갚아 주겠소.”

 

오네시모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과거에는 어둡고 무익한 삶, 도망치고 죽어버리고 싶은 삶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미래가 밝게 열린 무엇보다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게 기뻤다.

마치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생을 사는 것 같았다. 당장 죽는다 해도 미련이 없을 듯했다.

하느님의 역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모든 게 은총이요 신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평화신문 667호에서

 

St.Paul- XIVth century.Novgorods school.

성 바오로 사도 축일:6월29일.게시판1248번,1843번.

사도 성바오로의 개종 축일:1월25일.게시판907번,1585번.

 

[인식]

평평한 바닥에 널빤지를 놓고 걸어 보라. 아마 별 긴장감이나 어려움 없이 널빤지 위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똑같은 길이의 널빤지가 20미터 높이의 빌딩 사이에 걸려 있다고 생각해 보라.

똑같은 길이, 똑같은 너비의 판이지만, 바닥에 놓인 것보다 훨씬 길고 좁게 느껴질 것이다.

똑같은 널빤지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인식의 문제다.

 

오네시모는 도망친 노예였는데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주인인 필레몬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바오로 사도는 편지에서 필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더 이상 노예로 대하지 말고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도록 당부하였다.

오네시모가 로마로 돌아와서 주교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필레몬이 바오로의 뜻을 따른 듯하다.

 

오늘은 성 오네시모를 공경하는 축일이지만 필레몬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필레몬은 죽여도 아무 상관없는 도망친 노예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일 만큼 열린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생각을 바꾸면 자신의 삶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과거의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세상과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정 관념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은 무엇인가? 또 고쳐야 할 습관이나 행동은 무엇인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먼저 모든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보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만딜리온(Mandylion).중앙러시아. 1600년경. 32x27cm

이 러시아의 목성상(木聖像)은 만딜리온을 묘사한 것이다.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 그려진 구세주의 초상"은 옛 전설에서 전래되어 있는 바

에데싸 (Edessa) 의 왕자 아그바르 (Agbar)가

그리스도에게 한 사자(使者)를 보내어 그의 완치될 가망성이 희박한 중병을

고쳐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그리스도 자신은 그에게 오지 못하고 그 자신의 초상을 보냈다고 전한다.

 

이 초상은 그리스도가 그의 얼굴을 한개의 수건에 눌렀을 때

신비스럽게도 그의 얼굴 모습이 그대로 복사되었다고 전한다.

비잔틴에서는 이 복사된 수건을 후에 "Mandylion"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성화(Icon)의 표면은 금속판으로 덮여 있으며 이 성화에 소개된 만딜리온은 두명의 천사가 붙들고 있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축일:2월16일

니코메디아의 성녀 율리아나 동정 순교자

ST.JULIANA of Nicomedia

Santa Giuliana di Nicomedia Martire

Died:burned, boiled in oil, and beheaded c.305; relics at Cumae, Naples, Italy

Canonized:Pre-Congregation

Patronage :bodily ills, sick people, sickness

 

 

305년경에 순교한 동정 성녀.

캄파니아의 쿠매에서 그녀는 막시미안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 때에,

처음에는 자기 부친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았고,

그 다음에는 그녀와 결혼을 간절히 바라던 집정관 에빌라시우스로부터 또 다른 고문을 받았다.

그 후 감옥에서는 넘실거리는 불꽃으로 고문을 받다가 순교하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중세시대에 널리 알려졌다.

 

 

 

니코메디아의 성녀 율리아나 동정 순교자 축일:2월16일.게시판1638번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 동정 축일:6월19일.게시판1229번,1825번,
[성체축일]코르닐롱산의 복녀 율리아나 동정 축일:4월5일(4월6일),게시판1787번.
노리치의 복녀 율리아나 동정 축일:5월13일.게시판1761번.

성녀 율리아 빌리아르 축일:4월8일,게시판1081번,1701번.
성녀 율리아 축일:5월21일(5월22일).게시판1170번.
성녀 베로니카 율리아니 동정 축일:7월9일,게시판1262번.
성 율리아노 자선가 축일:2월12일.게시판1612번.

 

 

 

 

 

축일:2월16일

복녀 필립바 마레리

Bl. Philippa Mareri

Beata Filippa Mareri

Mareri,Salto nel Cicolano,1190/1200-16 febbraio 1236

Poor Clares at Rieti.Abbess.

 

 

성녀 필립바는 리에띠의 지꼴리 태생인데, 그녀의 집안은 아브루찌의 주요 지주 가문이다.

그의 부모는 신심이 깊은 부부인지라, 인근 지방에 설교하러 오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자기 집으로 모신 적이 있다.

이때부터 필립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완전히 본받으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들이 그녀의 결혼을 서두르자, 필립바는 삭발을 한 후 보기 흉한 옷을 입고는 몸을 숨겨버렸다.

 

이윽고 그녀는 집을 나와서 마레리오산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거룩한 어느 프란치스칸의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저 유명한 또디의 로제르 수사이다.

 

 

그녀는 성녀 클라라의 규칙을 채택하였고, 필립비가 원장이 되어 많은 동료들을 지도하였다.

철저한 가난생활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1236년, 그녀는 중병에 걸린 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성녀 클라라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동정녀

 

성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676번,1403번.
성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상흔 축일:9월17일.게시판644번,1369번.
성녀 클라라 동정 축일:8월11일.게시판591번,1312번.1313번.

 

 

[세라핌적 가난의 특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성녀 클라라에게 허가한(1228. 9. 17.) 세라핌적 가난의 특전

 

하느님의 종들의 종 그레고리오 주교는 아시시 교구의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도적 공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애하는 딸들인 그리스도의 시녀들, 클라라와 그 자매들에게 인사하며 사도적 강복을 보내노라.

 

1.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대들은 오직 주님께만 자신을 봉헌하기 위하여 세속의 모든 부귀 영화를 포기하였소.

그리하여 그대들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여지신 그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분의 발자취를 모든 점에서 따르며 어떠한 경우에도 그 길에서 떠나지 않기 위하여,

더 이상 어떠한 재산도 결코 소유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소.

 

2. 이러한 그대들의 결심은 어떠한 물질적 곤란을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사랑의 마땅한 도리로 결심하고 스스로를 영의 법에 굴복시킨 그대들 육신의 허약함은 임의 왼손이 머리 받쳐 도와 주실 것이기(참조:아가2,6;8,3) 때문이오.

 

3.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새들을 먹이시고(참조: 마태 6,26) 들의 꽃들을 입히시는(참조: 마태 6,26)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도 무엇이건 모자람이 없게 보살펴 주실 것이며, 그분을 마주뵈올 영원의 나라에서는 당신 바른손으로 그대들을 안아주시고(참조:아가2,6;8,3),

그분의 식탁에 자리한 그대들 사이를 오가며 손수 시중들어(참조: 루가 12,37) 주시리이다.

 

4. 이렇게 우리는 그대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지극히 높은 가난에의 결심을 사도적 호의로 뒷받침하고 보증하며,

어느 누구도 그대들에게 재산 받아들이기를 강요할 수 없게 이 문서를 통하여 사도적 권위로 확인하는 바이오.

 

5. 어느 누구도 우리가 인준하고 확인하는 이 기록을 훼손하거나 이에 대해 무모한 반대를 하지 말 것입니다.

누가 무엄하게도 이런 행동을 하려고 하면 전능하신 하느님과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진노를 부르게 되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페루지아에서 교황 즉위 제2년 9월 17일-

 

 

▒우리 수도회의 영성

성 클라라 수도회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라 성교회 안에서 거룩한 복음을 그대로 본받음을 생활양식으로 하고,

산 위에서 기도하신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기도생활로써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인 그리스도 신비체의 완성을 위해 봉헌된 관상 수도회이다.

성 클라라 수도회, 또는 가난한 자매 수도회라고 불리며, 프란치스코회의 제2회를 이루고 있다.

 

본 수도회의 생활양식이란 교회생활, 형제애, 가난, 관상이다.

우리 수도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모 마리아의 발자취를 따라 성령의 정배가 되어

오직 하느님만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 삼위일체의 친교 안에 가족적 일치를 이루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은 삶을 살아가는 봉쇄 안에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께 그 마음을 두는 관상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성자를 당신 마음에 꼭 들어하시는” 성부와 함께 산 위에서 관상 중에 계시는 그리스도(마태 17,5)를 본받아 증거하며 살아가는 관상 수도회이다.

 

침묵 안에 끊임없이 회개의 정신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봄으로써

모든 사람과 사물과 모든 사건 속에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발견하게 되어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이 찬미와 감사는 성체신비의 거행에서 절정을 이루며, 교회의 심장 역할을 다한다. 이로써 교회는 이 생명의 샘에서 한없이 새로워진다.

 

이렇게 자매들은 자신의 삶 전체로 온 누리의 찬미를 수행하며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축제에 들어감으로써 하느님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그 영광스러운 몸의 연약한 지체들을 받치는 받침대가 된다.

 

*제주 성 글라라 수도회에서 www.jejucla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