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옳다고 그러셨는데 난리난거죠.
온 집안을 뛰어 다니시면서
“ 아이고 구신은 뭐하나 몰러~ 안 잡아가고 아이고 못살아"
"아이고 아까워서 난 못살어”
아버지는 아무소리도 못하시고 베란다에 쭈구려 앉으셔서
달빛만 쳐다보시고,
하여간 어머니 목소리 쩌렁쩌렁 담장 넘어가고
아버지 목소리는
들려오지도 안고 그 상황이 쭉~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죠.
그래도 아버지 늘 기죽고 살고 계실 것 같아도
언제나 그러시는 건 아니십니다.
어머니 앞에서만 그러시는 척 하시고 계시는 거지
돌아서면 타고난 끼가 있으시거든요.
얼마 전에는 아버님 아시는 분 부탁으로
고시원을 맡고 계셨는데
그때 그 고시원에서 배출한 판검사가 열 댓명은 된다고
지금도 큰소리 치고 계시거든요.
진짜로 열 댓명 인지 아닌지는 알길이 없죠.
한번은 가족들이 다 있을 때 전화를 받으셨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시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시더니
“아! 이거 누구야 金 검사 아냐!" 자네가 웬일인가”
“뭐어? 날 찾아 오겠다고
아 올거 없어 검사가 얼마나 바쁜데 뭣 하러 찾아와
근데 이 판사는 아직 연락하고 지내?
이 판사도 날 찾는다고? 뭐어? 바쁘잖아!
그래도 바쁘니까 김 검사 오지 말고 잘 있어!
이 판사한테도 안부 좀 전해줘 끊어”
어머니는 그러시죠.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검사는 뭔 검사여 아직 시험도
안 봤는디 그러면,
아버지는 “헤헤헤~ 시험이야 보면 되는 거고 붙으면
되는 거지 뭐 내가 이렇게 하면 다들 좋아한다니까~”
고시원에서도 이러시니 얼마나 인기가 좋으신지 그런데,
이 고시원 경영도 한 6년 정도 하시다가 경기가 영 안 좋아서
결국은 접게 되면서 아버지 실직을 하셨거든요.
실직하시고 며칠 있다가 어머니 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에비야 나다. 내가 니 아버지 때문에 미치겠다.
"니 아버지 어디 취직 좀 시켜줘라 하루 종일 사람만
졸졸 쫓아 댕기고 아주 피곤해 죽겄어 내가".
그런데, 요즘처럼 취업 불황에
나보고 꼭 봐야 한다고 하며
졸려 죽겄는디"
"아 글세 내가 잠도 못자고 눈알 빠지게 봤는데
나오긴 개뿔 뭐가 나오냐 우루루루루 죄다 튀어 나오는디"
"니 아부지 얼굴이 뵈야 찾아보지 아휴"~
내가 잠도 못자고 그거 보느라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조금 기다리니까 아버지께서 드디어 오셨는데
저를 보자마다 얼마나 흥분 하셨는지
“거 혹시 텔레비전에서 나 봤냐”?
잘 보면 나왔을 텐데 못 봤어?
내가 대감님 집 대문 門열어주는 노비로 나왔는데 못 봤어?
아이고 아깝다 봤어야 하는데”
아버지 흥분하신 얼굴이 얼마나 재미 있던지
제가 다시 여쭤봤지요.
“아~ 아버지 노비 말고 정승역할도 많은데 정승하시지 그랬어요”
“야야야 정승이 뭐가 좋으냐” “우리는 정승 하라면 서로 안할려한다”.
아 글씨 더워죽겠는데
정승 하는 놈들은 옷도 못 벗고 머리에도
무거운 거 하루 종일 쓰고 있어야 하고
그 옷도 비싸서 구겨지면 아주 난리 지랄이야!
상놈이 최고야! 상놈이~
그냥 광목바지 입고 아무 대나 앉아도 되고 숨어 있어도 보이지 않아”
우리야 보기만 하니까 이왕이면 정승 하시는게 좋겠다고 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더라구요.
아버지게서는 거기다 덧붙이는 말씀이 “그 나랑 같이 들어간 양반은
장군 역활을 맡았는데 나보고 상놈 역 맡았다고 지가 장군이라고
좋아 하더니만 찍다가 병원 실려 갔잖아"~
그 담에 싸움장면 찍는데 그 갑옷이 얼마나 무거운 줄 아냐?
그 무거운 갑옷을 입고 그 칼도 무거운데
그거 들고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만
픽! 쓰러졌잖아~ 아이고 불쌍한 놈 그러기에 내가 상놈이 좋다고
그렇게 말해줬는데 말 않 듣더니만”
어머니께서는 힘만들고, 돈은 얼마 받지 못하고,
사극촬영이 있는 경우는
이박 삼일씩 집에도 못 들어오신다고 그러시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그러시는데 그만두실 생각이 전혀 없으시더라고요.
“니가 몰라서 그러지 내가 한 10년만 젊었어도
이 영화 한번 제대로 찍어 보는 건데 아까워 죽겠다.”
글쎄요. 10년 젊어 진다고 영화배우 하실수야 있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요즘 영화를 보면 무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스타가 되긴 하시더라고요.
지난번 사극 찍을 때 왠 아줌마 한분이 오셔서
싸인을 해달랬다고 한 적이 있어서 앞으로는 싸인 연습도 해야겠다고
하루 종일 연습도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나이 드시면서 무료하게 보내 실 수 도 있으실 텐데
그래도 재미나게 사시는 아버님이 보기 좋습니다.
아버지요 어머니 살살 꼬셔서 같이 엑스트라 하자고 그러시는 모양인데
어머님은 “아 시끄러워요! 엑스드라는 뭔놈의 엑스드라 여!”
이러고 마신다고 합니다.
글쎄요.
한때는 우리아버지도 인생의 주연이셨을 텐데
이제는 뒤로 밀려나 엑스트라 같은 삶을 살으시고..
그래도 아버지는 행복 하시다고 하시대요
인생을 늘 주연처럼 살수는 없겠죠?
저도 아버지 나이가 되었을때
아버지 만큼만 열심히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도 오래오래 건강 하세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조금 꾸며서 전유성 최유라 지금은 라디오 시대프로에
보냈는데..채택이 되어
방송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