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전삼용 신부님

원망하는 습관만 버려도|………◎

수성구 2018. 5. 25. 03:57

원망하는 습관만 버려도|………◎ 전삼용♡신부

 


원망하는 습관만 버려도


2018년 나해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복음: 마르코 10,1-12

저는 18살에 결혼하였습니다. 저희 집은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이었죠. 이런 말을 자주 했죠. “착한 딸은 부모에게 절대, ‘아니요’라고 하지 않는다.” 아빠는 저를 시집보내고 싶어 했고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빠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할게요.”가 전부였죠. 그리고 물론, 그것은 결코 행복한 결혼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2년이 지났을 즈음 교통사고를 당했죠. 왠지 모르겠지만, 제 남편은 졸음에 빠졌었죠. 그리고 차는 도랑으로 내리 꽂혔습니다. 남편은 탈출하기 위해 애를 썼고, 탈출했죠. 정말 잘 된 일이죠. 그러나 저는 차에 갇혀 있었죠. 제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말이죠. 오른쪽 팔뼈가 모두 부러졌습니다. 손목도 모두 부러졌죠. 어깨와 쇄골도 산산조각 났습니다. 갈비뼈는 전부 부러졌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을 뒤집어 놓은 부상은 따로 있었습니다. 척추 부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구하러 왔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차 밖으로 끄집어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 척추는 완전히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보낸 두 달은 지독하고 지독했습니다. 저는 절망의 끝에 서있었습니다. 하루는 의사가 오더니 “예술가가 꿈이었다고 들었는데요. 하지만 주부에 만족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겁니다.” 다음날 의사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척추 상황이 몹시 안 좋습니다. 다시 걷지 못 할 겁니다.” 심호흡을 하고 ‘그래, 괜찮아!’라고 다독였죠. 다음날 의사가 또 찾아왔습니다. “척추 손상과 등에 있는 고정 장치 때문에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겁니다.” 그 날, 저는 모든 걸 잃었습니다. 그 때부터, 내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나는 왜 살아있는가?’

하루는 오빠에게 부탁했어요. “내 손이 완전 불구가 됐다는 거, 나도 알아. 그러나 이 병원에서 하얀 벽만 보고 있는 게 너무 힘들어. 그리고 이 하얀 쓰레기 옷도 입기 싫어. 물감이랑 작은 도화지를 갖다 줘.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래서 제가 완성한 첫 작품은 ‘내 죽음의 침대에서’입니다.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곳이기도 하죠. 이 얼마나 놀라운 치료입니까? 한마디의 말도 필요 없이 내 마음을 꺼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죠.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곤 했죠. 혹은 “색감이 참 좋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안의 슬픔을 보진 못했습니다. 저를 제외하곤요.

그 날, 전 결심했습니다. 나를 위해 살 것이라고!

‘누군가를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 것이고, 그리고 날 위해 이 순간을 완벽하게 할 거야! 내 두려움과 맞서 싸울 거야!’

종이 위에 저의 모든 두려움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하나씩 이겨내겠다고 다짐했죠. 제가 가장 두려워 한 게 뭔지 아세요? ‘이혼’

그러나 이걸 극복하겠다고 결심하자 두려움은 내가 만든 허상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이것들을 놓아주자,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더 강인하게 만들었습니다. 전 남편이 재혼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이 잘 돼서 행복하고, 정말 잘 살길 바란다고’ 그리고 그 사람도 오늘 제가 그를 위해 기도한다는 걸 압니다.

제가 두 번째로 두려워했던 것은 ‘다시는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죠.

그것은 저를 절망에 빠지게 했죠. 그러나 곧 깨달았어요. 세상엔 정말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요. 그들이 바라는 유일한 꿈은 입양되는 거였죠!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저 가서,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주면 됐어요. 바로, 제가 한 일입니다. 저는 기관들을 찾아가 제 이름을 알려주었어요. 다른 고아원에도,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2년 뒤, 파키스탄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전화 한 통이 왔죠.

“당신이 무니바 마자리입니까? 이곳에 한 남자 아기가 있습니다. 입양을 원하십니까?”

저는 말 그대로 진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네 선생님 제가 입양할게요. 지금 아이를 데리러 가고 있어요.”

그 당시 아이는 태어난 지 2일 밖에 안됐었죠. 지금은 6살이 되었고요.

여러분이 만약 휠체어에 앉아야만 한다면,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 같으세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벽한 사람들의 세상 속에서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니까요. 그래서 전 대중 앞에 더 서려고 결심했어요. 그림을 시작했고요. 그리고 많은 모델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공중파 TV에 앵커로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성과 아동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2015년, BBC가 선정한 100대 여성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포브지의 30 UNDER 30에 선정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세요. 그럼, 세상이 여러분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이 안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엄청난 판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일이 굴러가지!’ ‘이건 제 계획입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우린 포기하죠. 저는 절대 휠체어에 앉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인생은 ‘시험과 실험’입니다. 이 시험은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쉬운 것을 기대할 때 삶은 여러분에게 레몬을 주지만, 여러분은 레몬에이드를 만들겠죠. 그러므로 인생을 탓하지 마세요. 무서워도 괜찮아요. 울어도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그러나 포기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말하죠. “실패는 선택할 게 아니다.” 아니오! 실패는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실패할 때 당신은 일어서고, 그리고 또 실패하고, 또 일어섭니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이 성장해온 방식입니다. 죽음이 오기 전에 죽지마세요. 우린 모두 어차피 죽습니다. 당신의 숨 쉬는 모든 순간을 끌어안으세요. 당신의 인생을 축복하세요. 삶을 사세요! 자신에게 친절하세요. 그래야 남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감사함에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하며 살아보세요. 모든 순간을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출처: ‘온 몸이 부러진 소녀’, 포크포크, 유튜브]

한 평범했던 파키스탄 여성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안에 들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원망’의 습관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데 있습니다. 인생에서 소위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가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됩니다. 원망이 버릇이 되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반성도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발전하려면 끊임없이 나의 탓을 해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원망의 다른 말은 타인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 원망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입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다른 종들에 비해 자신은 덜 받았다며 주인을 원망합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니 주인 좋은 일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나중에 오면 원금만 돌려주기로 하고 한 탈렌트를 땅 속에 묻어놓습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쓰라고 주신 탈렌트, 즉 재능이 있는데 그 재능을 원망으로 묻어 버리는 것입니다. 반면 모든 재능은 감사할 때 자라게 됩니다. 감사하면 원망하지 않고 실패를 기회로 삼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습니다.

탈렌트를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어제 묵상에서 9살짜리 꼬마 아이 때문에 150억 그루의 나무가 심겨지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북극곰이 사라지는 것을 어른 탓만 했다면 아이는 자신의 탈렌트를 발전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탈렌트를 발전시키는 일은 그 탈렌트를 선물한 주인에 대한 예의입니다. 하지만 탈렌트는 남 탓을 하고 남을 원망하는 습관 때문에 말라버립니다. 꼬마 아이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이웃을 원망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에겐 혹독한 심판만이 기다리게 됩니다. 우리 안에 어떤 재능이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원망하는 습관부터 버리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맡기신 재능이 자라날 것이고 그 재능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재능을 활용하였다면 심판도 이기게 됩니다. 원망하지 맙시다. 실망도 하지 맙시다. 실망은 자신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원망하는 습관만 버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 전삼용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