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위령성월에 떠오르는 단상

수성구 2013. 11. 21. 22:10

 

    위령성월에 떠오르는 단상
    11월은 돌아가신 연령들을 기억하는 위령의 달입니다. 위령성월은 
    또한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묵상하는 좋은 시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게는 먼 훗날의 일로만 생각되고 
    평소에는 이를 잊고 살다가 위령성월이 되면 불현듯 생각하게 됩니다.
    20년 전인 1993년 6월 평화방송의 ‘우리 함께 성가를’이라는 프로그램에 
    우리 본당 성가대가 출연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불렀던 성가 중에 
    ‘주여 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동생인 이분매 수녀님이 작사를 하고 오빠인 이종철 신부님이 작곡한 곡으로 
    장례 미사에서 고별식에 부르는 성가입니다.
    이 곡을 녹음하면서 사회자가 성가대원들에게 곡에 대한 생각을 물었는데, 
    단원 한 분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장례 미사 때 돌아가신 분을 위해 정성껏 이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언젠가는 돌아가신 분의 저 자리가 바로 내 자리가 되고 나를 위해서 
    성가대가 이 노래를 불러줄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나를 위한 노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아직 젊었던 저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그렇게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그분의 나이가 되고 보니 
    새삼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렇듯 죽음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를 남의 일로 여기고, 
    마치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분주하게 살고 있습니다.
    죽음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를 밝고 아름답게 그린 이가 있습니다.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입니다. 
    천 시인은 이 세상살이를 소풍이라 말하면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노래했습니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생전에 이른바 부귀영화를 누리기는커녕 모진 시련과 가난을 벗 삼아 
    남들이 보기에는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이 세상이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는 
    시인의 달관의 경지는 신앙인인 우리들이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천 시인은 훗날 “천주교 신자로서 신앙심을 이시에서 표현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인이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시몬이라는 세례명을 가졌던 그의 신심은 무척 깊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 떠나는 날, 천 시인처럼 “참으로 아름다웠더라”고, 또 내년 4월 
    성인품에 오르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처럼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묵상해 봅니다.
    김태식 토마스 / 가톨릭 언론인 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