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양승국 신부님

세상은 지나갑니다!|………◎

수성구 2017. 12. 30. 01:55

세상은 지나갑니다!|………◎ 양승국♡신부

           


세상은 지나갑니다!


요즘 휴가차 귀국하는 선교사나 유학 마친 후 귀국하는 형제들을 맞이하러 인천공항에 자주 나가는 편입니다. 연말연시를 맞아 출국하려고 대기 중인 수많은 인파에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안그래도 출국장 여기 저기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성탄이나 연말연시 장식에다, 해외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찬 상기된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착찹한 심정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수직상승하는 물가에, 치솟는 자녀 양육비에, 서민경제가 바닥을 치고있다는데, 너무나 경기가 안좋아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모금도 유래없이 저조하다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 이자로 극단적 상황에 내몰려 절망과 낙담속에 살아가는 이웃들이 부지기수라는데, 거기는 완전 딴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연피정 중인 이팔청춘 우리 젊은 수녀님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제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열심히 살아보려는 의식 있는 스님들 동안거 들어가듯이, 우리 수녀님들은 일년에 한번 의무적으로 연피정에 참석하십니다.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한 연피정 기간, 일반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모습이 참으로 안스럽습니다. 그 기간 동안 대침묵이 실시됩니다. 은근슬쩍 동료들과 말이라도 섞게 되면 즉시 와닿는 담당 수녀님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연피정 기간 동안 하는 일은 주로, 철저한 대침묵 속에 강의를 듣고, 기도하고, 성찰하고 가슴치고, 돌아보고 계획하는 일, 꽤나 부담스런 순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피정에 참석하는 수녀님들의 얼굴이 너무나 해맑고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너무나 사소한 약점이며 부족함이지만, 그것 조차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날 선 마음으로 자신을 연마하고 또 연마하는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영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이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하루하루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육의 이끌림에 따라, 하등동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우선적 관심사는 호의호식하는 것입니다. 그저 반짝 한탕 즐기는 것입니다. 소비향락주의에 깊이 함몰되어 먹고 마시고 즐기며, 그렇게 육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가지 크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한 사도의 말씀처럼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요한 1서 2장 17절)

이 극단적 부의 불균형 시대, 이토록 천박한 자본주의 시대 앞에 우리 수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사명에 막중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난무하는 세상 사람들의 욕망 앞에 더 가치있고, 더 고상한 삶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손에 쥔 것 단 한 푼도 없지만,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환한 표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 앞에서도 활기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환한 얼굴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 양승국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