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감동의 스토리

가슴에 묻고픈 엄마|◈─……

수성구 2017. 10. 6. 01:46

가슴에 묻고픈 엄마|◈─……감동의스토리

       


      가슴에 묻고픈 엄마 전 결혼한지 6년째 되는 주부입니다 결혼한지 6년이라고는 하지만 올해로 전 서른이 되지요. 저는 딸만 셋인 집의 막내딸이랍니다. 저는요 저의 친정엄마 얘기가 하고싶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즐겁게 보내고 계실 엄마가 저는 왜그렇게 그리운지.... 저희 엄마는 경기도 분이신랍니다. 저희 아버지는 부산분이시구요. 아버지가 엄마가 계신 경기도로 군대를 가면서 그당시 그동네에서 알아주던 미인이셨던 엄마를 아버지가 외가댁에 조르고 졸라서 부산까지 시집을 오셨던 겁니다. 그런데요 저희 친정엄마는 결혼전까지 술이라고는 모르고 사셨거든요. 외가댁이 모두 술을 못하시고 엄마는 아버지가 술을 잘 먹는것을 보고 그때서야 술이 있다는걸 아신모양이더라고요. 그렇게 신혼을 보내시고 저희 큰언니를 낳고 부터 아버지가 이상해 지셨데요. 일도 안하고 술만 먹고 또 바람도 피우고, 바람을 피우고 난뒤부터는 엄마에게 손까지 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엄마는 그러다 말겠지 하고 자식이 뭔지 우리들때문에 참고 사셨다고 하시더군요. 더군다나 딸만 셋을 낳으신 우리 엄만 무슨 큰 죄라도 지으신 것같이 참고 사셨지요. 언니들과 저를 업으시고 안해본일 없이 다 해보셨다더군요. 제가 일곱살때 엄마가 파출부에 나가시면 저는 언니들과 엄마 마중을 나가서 항상 엄마를 기다리던 생각이 납니다. 파출부를 해서 하루벌어 하루 쌀을 팔아 그렇게 먹고 살았지요. 그래도 아버지란 사람은 항상 그 하루 벌어온 돈으로 술을먹고 또 엄마를 때리고....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 엄마와 저 그리고 언니들과 아버지가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은 항상 아버지를 피해서 옥상 아니면 창고 같은 곳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지요. 안그러면 또 맞으니까.... 그런 지옥같은 생활이 계속 반복되고, 언니들은 야간학교를 다녀야 했고, 전 초등학교 졸업후 엄마를 따라 서울로 갔답니다. 그때도 역시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서 간것이랍니다. 그때 전 공장일도 남의집에서 식모일도 해봤지요. 단 몇달이지만... 그렇게 지내던중 아버지가 맘을 잡았다며 저희들 앞에 나타나 정말 손이 발이 되게 빌었고... 맘이 약하신 저희 엄만 다시 부산으로 오게 되었답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부산에 와서 이틀만인가 밖으로 나가신 아버지가 소식이 없지 뭡니까? 다음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버지가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지요. 빨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그렇게 술만 먹고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지만 엄마는 수술을 시키셨고, 병원에서 엄마와 전 꼬박 사개월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뒤에 안 사실은 아버지가 술을 먹고 지나가는 사람이랑 시비가 붙어 돌로 머리를 맞안는데 그게 누군지 기억도 하지 못했답니다. 그 사고로 우린 아버지가 좀 나아지실거라 기대했지만 정 반대였답니다. 아버지는 사고로 왼쪽을 못쓰게 되셨고... 집에만 계시게 된 아버지는 전보다 더 엄마와 저희들을 괴롭혔습니다. 저흰 병원에도 넣어보고 별의별 짓을 다했지만, 그때마다 병원에서 도망쳐서 집에오고, 그리곤 엄마를 때리고 저희 정말 죽고 싶은 나날을 보냈답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다니면서 저희 아버지와 떨어져서 지내게 되었지요. 알고 보면 저희가 도망다니면서 산 것이지요. 더이상은 아버지와 살수가 없어서..... 그러면서 큰언니가 결혼을 했고 자연스레 아들이 없는 저희 엄마는 큰언니와 살게 되었지요... 저역시 엄마와 함께 큰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저희 엄마 고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답니다. 어딘가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 있는 언니는 엄마와 산다는 이유로 맞벌이를 했고... 언니의 아이는 엄마 차지가 되었지요. 아시잖아요. 애본 공은 없다고.... 항상 힘들게 외손주를 보시고 또 살림도 다 살아 주시고, 호강도 한번 못시켜준 딸한테 미안해 하시면서 온갖 짜증 신경질 다 받으시면서 그렇게 지내셨지요. 저와 언니들 모두가 그렇게 결혼을 하고 여전히 엄마는 그렇게 힘들게 지내셨고... 큰언니가 그렇게 엄마에게 막 대해도 저흰 엄마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수가 없었지요. 엄마가 힘들어 하실때 제가 결혼만 빨리하지만 않았어도 엄마랑 둘이 그냥 살걸, 그랬으면 엄마가 좀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이제와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을... 그리고 언니가 둘째 아이를 낳고 엄마는 정말 너무나 힘들어 하셨답니다. 그렇게 힘들어 하신던중 2001년 가을... 갑자기 엄마가 쓰려지셨지요. 심근경색이라고 정말 생소한 이름의 병이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죽어간다는... 이제와서 알았지만 그병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것을... 저희 엄만 추석을 이틀인가 남기시고 병원에 가신지 3일만에 환갑도 못 챙겨드시고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명절때 혼자 계시기 싫어하시더니 딸밖에 없어서 항상 명절을 혼자 보내시너니... 그해 추석때는 딸들과 사위들과 외손주들과 그렇게 마지막 길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임신 중이었는데... 상을 치르고 몇개월후 아이를낳았는데 그때 아이가 지금은 두돌이 다 되어 간답니다. 그렇게 효도 한번, 호강한번 못시켜 드리고 갑자기 가신 엄마가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로 왜그리 그리운지요... TV에서 혹은 주위에서 친정엄마가 나오는 장면을 볼때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요. 그래도 요즘은 세탁기다 뭐다 살기가 정말 편해졌는데, 저희 엄만 일하시며, 손수 손빨래 다하시고 딸들 고생하는거 안쓰럽다고 저희 손에 물한방울 안뭍히게 혼자 다 하신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가슴이 저려 옵니다. 57세라는 나이에 가신 엄마가 왜 그리 야속하고 불쌍한지요... 해가 거듭할수록 엄마가 살아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큰힘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 뼈에 사무치게 느껴질때면 정말이지 산다는것 자체가 왜 그렇게 서러운지요. 정말 이렇게 서러움이 느껴질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가르쳐 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