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지난 아픔을 묻으며....|◈─……감동의스토리
어릴 적 시골 농가로 입양된 아버지는 친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며 도박에 손을 대셨다.
양부모의 땅까지 날리고 쫓겨나듯 집을 나와 어머니를 만나셨지만 결혼한 뒤에도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두 살 되던 해, 살던 집마저 빚쟁이 손에 넘어가자 어머니는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하셨다. 몇 해가 지나 아버지는 새엄마를 데리고 오셨다. 곧 아들을 낳은 새엄마는 늘 언니들과 나를 구박했는데 한번은 추운 겨울에 우리에게 도둑 누명을 씌워 밤새도록 대문 밖에 세워 놓기도 했다. 새엄마는 도박에 빠진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셋을 각각 남의 집으로 보냈다. 큰언니는 노부부가 사는 집 가정부로, 작은언니는 의상실 보조로, 나는 의상실 사장님의 시댁인 과수원으로 보내졌다. 과수원에 도착한 첫날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진 두려움이 날 움츠러들게 했다. 또한 그곳 생활은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것이었다. 겨울에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소여물을 끓여야 했고, 봄엔 새벽 어스름에 딸기를 따야 했다. 하루는 비 오는 날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집 막내아들이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가더니 형수를 나무라며, 젖은 내 머리를 닦아 주었다. 그때부터 난 그를 삼촌이라 부르며 의지했고 삼촌도 나를 아껴 주었다. 열일곱 살이 된 어느 날, 나는 안채와 떨어진 아랫방에서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인기척에 놀라 깨 보니 삼촌이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 "가만 있어! 소리 지르면 화낼 거야." 그 뒤 삼촌은 서울로 가 버렸고, 난 너무 혼란스러워 작은언 니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난 억울하게도 집으로 가기 위해 거짓말을 한 영악한 아이가 되고 말았다. 동네에 소문날 것이 두려웠던 과수원집 주인은 나를 언니가 일하는 의상실로 보냈다. 하지만 난 그 집 식구들이 보기 싫어 곧 아버지가 있는 서울로 갔다. 예전보다 집안 형편은 더 어려웠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운명은 또 다시 나를 배신했다. 아버지의 하루 일당이 감쪽같이 사라진 날, 새엄마는 나를 도둑으로 몰며 심한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마구 던졌다. 대문 밖에 서서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버지를 보자마자 "왜 날 낳았어요. 책임도 못 질 거면서"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아버지가 내 뺨을 때렸다. "그러기에 왜 돈을 훔쳐! 과수원에서도 문제만 일으켜서 쫓겨났다며?" 순간 난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부르며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 날 새엄마는 나를 기숙사가 있는 봉제 공장으로 보냈다. 공장 일은 힘들었지만 친구 소개로 좋은 남자를 만나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잊어 갔다. 나는 행복한 가정을 꿈꿨고, 그는 내게 청혼했다. 하지만 아버지 손을 잡고 싶지 않아 혼인 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예쁜 딸을 낳았고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한 가장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신의 시기였을까. 남편이 출근길에 그만 뺑소니차에 치이고 말았다. 남편은 두 달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했고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아버지와 언니가 병원에 찾아왔다. 그 사이 더 여윈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는 땀에 젖어 꼬깃 꼬깃해진 만 원짜리 몇 장을 내 손에 쥐어 주며 기운 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를 배웅하고 병실로 들어오는 그 짧은 순간에 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지금은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 가족이 손을 꼭 잡은 채 병원 문을 나서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밤새 내린 눈 속에 아픈 기억은 모두 묻어 버리고, 소복이 내린 눈밭에 우리 세 식구의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 감동 스토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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