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2789

오르비에토의 성체포

오르비에토의 성체포 오르비에토의 성체포 1263년 독일인 사제 프라그의 베드로신부는 로마로 순례가던 도중 볼세나(Bolsena)에서 묵게 되었다. 그는 경건한 사제로 알려져 있었으나, 축성된 면병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가 순교자 성녀 크리스티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에서 미사성제를 거행하고 있었는데, 성체 축성을 하자마자 축성된 면병으로부터 피가 흐르기 시작하여 신부의 손가락들을 적시고 제대와 성체포 위로 흘러내렸다. 신부는 몹시 당황하였다. 처음에는 피를 감추려고 했으나 곧 미사를 중단하고 마침 교황 우르바노 4세께서 머물고 계시던 이웃 도시 오르비에토로 인도해 달라고 하였다. 교황은 신부의 보고를 듣고 나서 그를 사면하셨다. 교황께서는 즉시 이 일을 조사하도록 ..

하늘에 울리는 땅의 소리

하늘에 울리는 땅의 소리 - 하늘에 울리는 땅의 소리- 수도자가 하는 모든 일은 기도라는 한 점에 방향 지워져 집중 되고 있습니다. 일생을 기도 속에서 지내기 위하여 고독과 침묵에 몰두하는 수도원에 들어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날 그날의 양식을 얻기 위하여 땀을 흘리고 일을 합니다. 자유로운 시간은 모두 기도에만 바칩니다. 즉 끊임없이 주님의 얼굴을 찾는 일에 바칩니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단 한 가지 보람 입니다. 이것이 또 그에게는 수도생활의 핵심입니다. 기도하고 있을 때야말로 처음으로 수도자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 "하느님께 쓰이는 사람" 이 되는 것입니다. 앙드레 루프-

몸의 고통은 남아 있다

몸의 고통은 남아 있다 몸의 고통은 남아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겪어야 할 고통을 모두 겪으셨다. 당신이 받아야 할 고통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다 받으셨다. 그렇다면 주님의 고통이 다 끝났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머리로서의 고통은 끝났다. 그러나 몸의 고통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몸의 고통을 아직도 겪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한 당신의 속죄 행위에 우리도 함께 참여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함께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지체이므로, 머리가 겪는 고통을 지체들도 당연히 참고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 성 아우구스티노 -

거룩한 미사

거룩한 미사 미사 성제를 통하여 우리는 십자가의 희생을 단지 하나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갈바리아의 제사는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의 위대한 현실로서 바로 현재 안으로 들어선다. 시간과 공간은 사라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예수님께서 여기에 현존하신다. 모든 신자들은 주님의 거룩하신 희생의 의지와 일치하여 자신 앞에 계신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을 살아 있는 제물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봉헌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미사는 엄청난 실체적 체험이며, 골고타를 현실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슬픔과 통회, 사랑과 헌신, 영웅심과 희생정신의 물줄기가 제대로부터 흘러내려 기도하는 신자들을 적시며 흐른다. - -

성체를 사랑합시다

성체를 사랑합시다 성체는 우리 마음의 지고한 열망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열정적으로 사랑합시다! 오십시오! 우리 주님에 의하여 사로잡힙시다. 조금이라도 그분만을 위하여 그분을 사랑합시다. 우리 자신을 잊고 이 선하신 구세주께 스스로를 내어드립시다. 우리 자신을 좀더 희생하십시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타오르는 촛불이 되어 보십시오. 우리 주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는 번제물이 되어보십시오. 우리 자신의 삶을 살지 말고 성체의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시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를 무척 사랑하십니다. - 성 피에르 쥘리앙 에이마르 -

너보다 더 변하기 힘든 나

너보다 더 변하기 힘든 나 너보다 더 변하기 힘든 나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한민택신부) 신앙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성당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일컬어 냉담교우라고 합니다. 사실 그들은 신앙의 길에서 떨어져 나간 낙오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소 증명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냉담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성당에는 나가고 있지만 우리 마음은 얼마나 자주 주님께로부터 멀어진 채 냉랭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나요? 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종종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여행. 스포츠 등 다양한 여가활동. 텔레비전과 인터넷. 스마트폰과 각족 문명의 이기들. 우리의 정..

누군가가 죽었다 살아나도 안 되는 것

누군가가 죽었다 살아나도 안 되는 것 누군가가 죽었다 살아나도 안 되는 것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한민택 신부) 루카 복음서의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부자는 이승에서 부유하고 호화롭게 살았지만. 거지는 부자의 집 대문 앞에서 가난과 병으로 찌들어 죽어 갔습니다. 둘이 모두 죽은 다음.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라자로가 보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라자로를 아버지 집으로 보내서 자기 다섯 형제들만이라도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 해달라고 청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 말을 들으면 된다고 답합니다. 죽은 이들이 살아서 돌..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것 말고는 그 무엇도 선하고 거룩하고 완전한 것이 없다. 그리고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실행하기란 어렵지 않은데, 그것은 그에 합당한 은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나에게 유익하고 어울리는 것만을 바라실 따름이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것도 나의 약점도 다 알고 계시기에, 나를 위해 언제나 최상의 것만을 골라주신다. 그렇다면 나에 관한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알아차리고 훌륭히 실행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삶의 절대 원칙, 그리고 내가 꼭 유념해야 할 사항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좋으신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하느님께서는 내적 은총을 주시어 나를 당신의 거룩한 뜻에 가까워지게 하시며, 또..

감사 때문에

감사 때문에 감사 때문에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탠'이라는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1976년에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척추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척추암은 수술로도 약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몇 달 후에 그가 병상에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출근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병이 낫게 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탠리 탠은 “아 네, 전 하느님 앞에 감사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병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어도 감사합니다..

이미 내 곁에

이미 내 곁에 [이미 내 곁에]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고, 성령의 힘으로 성모님께 태어나시며, 사람이 되신 분, 이 모두가 특별한 장소와 특정한 시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시고, 빵과 포도주를 드시고,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먹고 마실 빵과 포도주가 되신다. 정말이지 성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육화(肉化)는 이제 특별한 곳,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옛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살았던 그때에 나도 살았더라면…” 하는 식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때 그 제자들 곁에서 계시던 것보다 오히려 더 가까이 이미 내 곁에 계신다. 예수님은 바로 오늘 나의 양식이다. [헨리 나우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