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2789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우리 몸에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우리 자신을 십자가의 보호 안에 두는 것이다. 십자가는 일상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일이지만 우리 앞의 방패와도 같다. 십자가는 수난의 상징이며 동시에 부활의 상징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구원의 지팡이다. 십자가는 세례 때 우리 몸에 생생이 그려진다. 세례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같이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난다. 십자성호를 자주 그을수록 우리의 세례는 새롭게 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게 된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 -

내가 믿는 하느님과

내가 믿는 하느님과 내가 믿는 하느님과 나를 믿는 하느님은 다른 분입니다. 나는 축복을 보고 하느님을 믿지만 하느님은 나를 축복하십니다. 나는 하느님의 호주머니를 보고 사랑하지만 하느님은 나를 보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식으로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믿는 하느님 식으로 믿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하느님의 호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해 하느님을 사랑해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오로지 우리 삶의 목적이십니다. 그것만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계십니까? - 김강정님의 글에서 -

지혜가 주는 인생길

지혜가 주는 인생길 지혜가 주는 인생길 지식이 많다고 지혜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간혹 우리 중의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운 지식으로 인해 오히려 오만하게 되어 지혜를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혜의 첫걸음은 자기가 미흡하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고 합니다. 지혜롭다는 건 우선 고개를 숙일 줄 안다는 것이지요. 유태인의 속담 중에 '태양은 당신이 없어도 뜨고 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광활한 우주와 오묘한 자연속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는 보잘것없는 작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껏 오만을 떠는 것은 지식만 있었지 지혜가 없는 까닭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우리 인간은 결국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나 지혜의 문만 열게 되면 인생의 많은 난관들을 비교적 ..

수도 없이 반짝거리는

수도 없이 반짝거리는 수도 없이 반짝거리는 성인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사도 바울로께서는 그리스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들”이요, “성인들”이라고 불렀다. 바울로 사도는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각 처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부르심 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고린 전 1,2 참조. 에페 1,1).” 라고 당신 편지의 서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聖德은 예수님의 성령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이다. 바울로 사도는 이를 두고 “우리는 모두 얼굴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비추어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

제대 가까이 오십시오

제대 가까이 오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인을 부러워하시겠지요. 그리고 눈물로써 그분의 발을 씻겨 드렸던 죄 많은 여인과, 그분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시중 들었던 갈릴래아 여인들, 그분과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사도들과 제자들, 그분의 입술로부터 솟아나오는 은총과 구원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을 부러워하겠지요. 제대 가까이 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영성체로써 그분을 느낄 수 있으며, 그분께 거룩한 친구를 할 수 있으며, 그분을 여러분의 눈물로 씻어드릴 수 있으며,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분을 여러분 안에 모시고 다닐 수 있습니다.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

문제 해결의 비결

문제 해결의 비결 5월 첫째주 부활 제5주일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요한 15.1-8) 문제 해결의 비결 (송동림 신부. 제주 신성여자중학교 교장) 언젠가 학교 문제로 힘들 때가 있었다. 난생처음 잠을 자다가 너무 머리 아파 진통제를 먹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제연례피정에 참석하게 되었다. 피정 지도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면서 말미에 학교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학교 일은 잊고. 먼저 하느님을 만나십시오! 나름대로 신부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실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짧은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신부님의 그 말씀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당시 내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내가 너무 학교 일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 반면에 하느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닦아야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닦아야 어느 날 밤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닦고 있는 천사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닦고 있습니까?" 그러자 한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세상이 너무 더러워서 닦고 있답니다." 천사들이 산과 바다와 나무들을 닦아 깨끗하게 빛났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닦아도 빛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천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은 왜 닦아도 빛이 나지 않지요?" 그러자 천사가 빙그레 웃으며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의 마음은 자신이 닦아야 빛을 낼 수 있답니다." - -

분노와 영성

분노와 영성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분노와 영성) 영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감정의 분노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화를 내면 손가락질을 당하고 본인도 깊은 자괴감에 빠집니다. 분노가 영성생활의 적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인지 가톨릭교회의 성인화를 보면 대부분 아주 온유한 얼굴만을 그린 것을 알수 있고 심지어 주님조차 착한 어린 양이나 저항하지 않는 온유한 분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실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성 신학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생활을 마치 분노를 없애기 위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오랫동안 지속돼 왔습니다. 그런 바람에 고해소에서 화를 냈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줄줄이 생기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분노란 무엇인가..

당신의 뜻

당신의 뜻 당신의 뜻 율법에 무엇이라 씌어 있습니까?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주님을 사랑하여라."(신명6,4-5)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레위19,18) 그대로 하십시오. 그러면 살 것입니다. 생명 곧 하느님 자신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소명이고 나의 소명입니다. 나는 주님께 이 소명을 청했고, 청하고 있고, 다시 청할 것입니다. 즉 나는 그 소명이 내 안에서 실현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그분께 청했던 은총의 선물이고, 그분이 사랑을 통해 내게 베출어 주셔야 하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내가 언제나 당신 뜻을 알게 해주소서. 그 다음에는 그 뜻을 열렬히 원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서는 당..

이제야 하느님을 봅니다

이제야 하느님을 봅니다 스페인의 위대한 작가인 로페 데 베가가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었을 때, 그의 인생이 영화처럼 그에게 펼쳐졌다. 그는 많은 성공을 했고 일생동안 갈채가 넘쳤으며 천 편이 넘는 희곡 작품으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단지 성공만을 위해 살았었다. 그렇게 성공적인 인생의 마지막이 어찌 평화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에게 죽음이라는 마지막이 다가오자 그는 갑자기 다른 것을 보았다. 그를 보살펴 온 의사는 그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말했다. "당신은 행복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세계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역사의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 죽어가는 작가가 말했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봅니다. 하느님 앞에는 선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위대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