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2789

자기 앞날

자기 앞날 자기 앞날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되기 위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필요 자주 웃을수록 복 오고 건강해져 자기 앞날을 알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했습니다. 눈을 감으시고 칠순 잔치를 상상해 보세요. 내 옆에 누가 있는지. 상에는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는지 보세요. 잠시 호흡을 고르고 이번에는 팔순 자치를 상상해 보세요. 내 주위가 어떤 모습인가요? 호흡을 고르고 구순 잔치를 상상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과제를 드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상 속의 자신이 보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나의 무의식에 물음을 던지면 무의식은 지금의 상태를 근거로 해서 앞날 내가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100% 믿을 만한 것은..

만물이 이야기하고 하늘이 속삭인다

만물이 이야기하고 하늘이 속삭인다 만물이 이야기하고 하늘이 속삭인다. 그러나 하느님은 잠자코 계신다. 그래서 나는 성모님의 발현이나, 그분의 현존을 표하는 놀라운 기적에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차라리 덤덤한 로사리오 기도를 그분께 올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그분께 말씀을 여쭙는다. 나는 착각에 빠질까 두려워한다. 보이지 않는 분과의 만남에서 감각적 위안을 기대치는 않는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걷는 길은 착각과 환영에 사로잡힌 길과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그 길은 하느님의 침묵 속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십자가 밑을 지나는 길이다. '어둔 밤'을 걸어가는 길이다. 그 어둠이 빛과 마찬가지다. 우주 안은 어둡다. 대기권 밖은 어둡다. 그러나 이 순수한 어둠보다 환한 것이 세상에 ..

너희가 바라는 것을 청하여라

너희가 바라는 것을 청하여라 우리 주님이 여기 숨어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만나도록, 당신께 청원을 드리도록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알아주시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분은 죄수처럼 숨어 계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지만 아무 상관하지 말고 너희가 바라는 것을 청하여라. 내가 그대로 해주겠다." 주님은 사랑의 성사 안에 계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죄인들을 위해 끊임없이 아버지께 탄식하며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일이나 불필요한 것에서 벗어나 주님께 기도하거나 성체방문을 하기 위해, 또 주님이 받는 모욕을 위로하기 위해 주님께 와서 잠시 머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

미리 맛보면서

미리 맛보면서 미리 맛보면서 그 어떤 폭력도 없이 남녀노소 모든 이가 온갖 피조물과 어우러져 사랑스럽고도 평화로이 살아가는 왕국을 기대하고 꿈꾸는 이 놀라운 비전은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 안에 실현되어져야 한다.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을 미리 맛보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이웃을 용서할 때마다, 어린 아이들을 웃게 만들 때마다, 고통 받는 이에게 자비를 보여줄 때마다, 누군가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할 때마다, 맹수와 가축들을 가련히 여길 때마다, 환경오염을 줄이려고 노력할 때마다, 우리의 집과 뜰에 아름다움을 가꿀 때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마다 우리의 꿈과 비전은 현실이 된다.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이런 꿈과 비전을 상기시켜줘야 한다. 이런 ..

구원의 법

구원의 법 구원의 법 예수님께서는 악을 행하게 하는 유혹을 극복함으로써 악을 쳐 이기셨고 죽음 그안에 사랑을 주입하심으로써 멸하셨습니다. 간단히 말해, 예수님께서는 악에 대해서는 그 본질을 쳐 이기시고 죽음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여 순교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죽음으심으로써 인류에게 평화를 다시 안겨 주시고 우주 전체에 조화를 찾아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입니다. 특히 그분의 그러한 행동 양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원리가 설정되었습니다. 그분이 가신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악을 행할 것이고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법이 설정 되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여기에 당신 구원이 있습니다. 당신 안에 있는 악을 부숴 버리고 순교의 삶을 성숙케 하십시오. 여정..

세 종류의 감사

세 종류의 감사 세 종류의 감사 사람들이 사용하는 감사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우선 첫 번째는 ‘만일’의 감사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식의 조건부 감사인 것이지요. 두 번째는 ‘때문에’ 감사입니다. “취직이 되어서 감사합니다.”, “병을 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식이지요. 즉, 과거에 근거해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식의 감사를 고백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면 자신이 잘해서 그런 것으로 착각하기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세 번째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내가 실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병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사람..

그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은 그대가 아니다

그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은 그대가 아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멜리데(Melide)라는 작은 성당에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십자가가 하나 있습니다. 이 십자고상에는 예수님의 오른팔이 못에서 빠진 채 밑으로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옛날에 이 십자가 아래에서 어떤 신자 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 뒤, 고해소에 들어가 신부님께 모든 죄를 눈물 흘리며 고백했습니다. 사제는 그에게 사죄경을 외워주면서 앞으로 다시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후 그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했고 또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얼마동안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결..

종교 바이러스와의 전쟁 중

종교 바이러스와의 전쟁 중 종교 바이러스와의 전쟁 중 (꼰대 신부 홍성남의 웃음 처방전 중에서) 유튜브를 보는 분들이 가끔 묻는다. 신부님은 왜 좁은 방에서 혼자 유튜브 강의하시나요? 토요일 텅 빈 사무실에서 작업하다 마주치는 분들도 묻는다. 이 더운 날 혼자 뭐 하세요? 주말이면 텅 빈 복도. 에어컨도 안 나와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며 강의록을 만들고. 동영상을 찍으며 혼잣말을 중얼 거린다. 이건 전쟁이야. 종교 바이러스와의 전재. 이건 나만이 할 수 있어. 코로나는 백신이 나오면 종료되지만 병적인 신앙. 종교. 바이러스는 그 생명력이 끈질기다. 온갖 껍질을 뒤집어쓰고 나타나고. 변장과 연출을 하기에 쉽사리 잡기 어렵다. 특히. 대중의 사고 깊이가 얕을수록 불안감이 심하고. 콤플렉스가 클수록 바이러스는 ..

정의를 왜곡하는 재판

정의를 왜곡하는 재판 정의를 왜곡하는 재판 (성경 속 하느님 생각 민남현 수녀) 불의의 희생타는 대부분 약자의 몫이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억울하게 패소한 가난한 여인의 울부짖음이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이젠 법도 나라도 믿을 수가 없어요. 내 가족밖엔 믿을 곳이 없네요. 현실의 아픔을 마주할수록 하느님의 정의는 자비로 빛나는 햇살이 된다. 탈출기 23장 2절에서 지극히 현대적인 문제를 주시하는 하느님의 마음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다수결 원칙에 결정적 약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날카로운 지혜의 말씀이다. 다수의 의견이 자유와 평등을 근거로 하지 않을 때 오히려 힘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며 힘의 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