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2789

하느님의 교육

하느님의 교육 하느님의 교육 온 세상의 교리교사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랑이신 그분의 성령께서 모든 경계를 넘어 그분이 창조하신 그분 자녀들에게 이르십니다. 그분은 그들을 잊으실 수 없습니다. 나는 그분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분이 우리를 잊으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또 비록 우리가 결코 어떤 선교사도 그분에 대해 이야기해 주러 오기 어려운 머나먼 곳에 살고 있더라도 그분이 우리에게 교리교육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 하느님의 교리교육은 단순합니다. 그분처럼 단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답게 살고 행복을 실현시켜 나가기에 필요한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든 사람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아십니다. * 하느님은 살아 계신 분이고 선하신 분이십니다. * 하..

하느님의 관심

하느님의 관심 하느님께서 늘 당신이 빚으신 세상을 보고 계시지요 하느님께서 늘 당신이 깃든 세상에 마음 쓰시지요 하느님께서 늘 당신이 떠나보낸 세상과 함께 하시지요 하느님께서 늘 당신을 모르는 세상을 알고 계시지요 하느님께서 늘 당신을 잊은 세상을 기억하시지요 하느님께서 늘 당신을 밀어낸 세상을 사랑하시지요 그리하여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바로 그때에 그리하여 세상이 바라는 바로 그때에 그리하여 당신이 뜻하신 바로 그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지요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

밖으로는 싸움이고 안으로는 두려움

밖으로는 싸움이고 안으로는 두려움 밖으로는 싸움이고 안으로는 두려움 (2코린 7.5) 문득 아주 오래전 일을 떠올려 본다. 그날은 부활절이었다. 정성껏 다림질한 외출용 군복차림으로 우리는 민간인들을 본다는 즐거움으로 설레었다. 신병인 우리가 탄 군용 트럭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성당이 있는 사단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려 난생처음 성전에 들어갔다. 군부대 근처 주님과 가족이 눈에 띄었다. 기천불 신자(무신론자를 일컫는 표현)였던 나는 가톨릭에 문외한이었다. 말하자면 가짜 환자(군대 속어로 비신자가 종교활동 하는것을 말함)였다. 그날 나는 곁눈질로 보며. 옆 사람 따라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미사를 마쳤다. 나갈때 알록달록 색칠한 부활절 계란을 선물로 받았다. 내딛는 첫걸음이 길을 만든다..고 하였다. 지..

가장 절실한 순간

가장 절실한 순간 4월 셋째주 부활 제3주일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루카 24.35-48) 가장 절실한 순간 (강태현 신부. 의정부교구 일산성당 부주임) 첫 본당에서 에스텔 자매를 알게 되었다. 본당 관할구역 안에 암 전문 요양원이 있었는데. 가끔씩 그곳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해 연이 되었다. 자매는 30대 중반인데 6년째 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하고 싶은 것 많은 꿈같은 나이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파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늘 씩씩하게 항암치료를 이어갔다. 어느 날 요양원에서 근무하던 본당 자매로부터 연락이 왔다. 에스텔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병자성사를 요청한다고 바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상태가 좋지..

소죄에 대하여

소죄에 대하여 소죄에 대하여 대죄나 소죄나 그 거역하는 대상이 되는 분은 같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소죄의 결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소죄는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와 은혜를 우리로부터 앗아가 버립니다. 이 특별한 섭리, 즉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는 어려움을 멀리하게 하고 악령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하느님 자신의 절대적인 우정으로 유혹 중에 있는 영혼을 돌보십니다. 우정에서 때로는 하찮은 문제가 친구 사이를 떼어 놓듯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일 주님의 친구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분을 어겨서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분명히 주님의 마음을 상해 드리게 됩니다. 소죄를 반복함으로써 우리의 영적 감각은 둔해 집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 안에서 그분을 보지 못하고 기도 중에도 하느님의 목소리..

감정도 죄인가?

감정도 죄인가?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감정도 죄인가? 상담을 하다 보면 죄가 아닌 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질책하는 분들을 보곤 합니다. 특히 화를 낸 것에 대해 죄스러워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 마음 안에 분노가 생긴 것까지도 죄라고 여기는 분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왜 화를 내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으면 거의 모든 분들이 주님께서 화내지 말라고 하지 않느셨냐? 본단 신부님께서 화내는 것은 물론 마음 안에 분노를 품은 것도 죄라고 하셨다..고 답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정말 화를 내신 적이 한 번도 없는 늘 온유한 분이셨는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상인들이 장사하는 것을 보고 상을 뒤집어엎으실 정도로 주님께서도 화를 내셨습니다. ..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 이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유일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의지와 능력이 거룩한 뜻의 선로를 따라 나아가도록, 다스리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우리의 의지가 이에 거역하고 반항하려 한다면 길들여야 하고, 어긋난 길을 가려 한다면 막아야 하며 회피하려 한다면 도망가지 못하게 강제로라도 제자리로 끌고 와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 안에는 하느님과 형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끼아라 루빅, 중 '오늘날 본질적인 것'에서

이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이날은 무슨 날입니까? 이날은 바로 생명의 원천이시며 광채의 창조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당신 자신에 관해 "나는 낮이다. 낮에 거니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영원한 빛이 비추는 그 옥좌에 도달할 것입니다. - 옛 교부의 파스카 강론에서 -

주님께 돌아온다면

주님께 돌아온다면 (성경 속 하느님 생각 민남현 수녀) 신명기 30장에서 모세는 소속감과 관련된 표현을 거듭 사용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과 어떤 사이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주 너희 하느님이란 칭호가 30장 1-20절에 열일곱 번이나 나오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속한 존재임을 부각시키고 그분께로 돌아와야 하는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남으로써 맞게 될 불행한 사건에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그 해결책으로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회심의 걸음을 제시한다. 여기서 하느님 백성의 회심이 유배의 고통을 종결짓는 방법으로 소개된 것이 특이하다. 곧 대부분의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벌을 피하게 하라는 예방 수단으로 회심을 요청했다면 신명기 30장의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요청은 하느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