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225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TV에서 요새 젊은이들과 현대인들의 멘토인 어느 스님이 나오는 프로를 보았다. 그리고 오늘 페이스북 안에서 우리 천주교 신자들 중에, 그 자리에 가서 그 스님과 사진을 찍은 것을 올렸고, 동료들이 그렇게 부러워하고, 팔장끼고 찍은 사진을 보고, 나는 그 다음에 포옹을 할거라는 둥 하면서, 천주교 신자간에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농담을 서슴치 않는 것을 보았다. 나도 우연히 어제 채널을 돌리다가 그 프로를 반 이상은 본 것 같다. 참으로 자신의 몸둥아리 하나를 끌고 가기 힘든 세상에, 스님께서 정신적 멘토로서 좋은 말씀을 전해 주는 걸 보았다. 그러한 말씀들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수덕과 수행 정진을 통해 얻어낸 깨달음이라 여겨졌고, 그러기에 청중의 공감을 얻어낼..

희망의 기도 2021.11.10

이 땅의 삶이 내세의 삶과 직결된다

이 땅의 삶이 내세의 삶과 직결된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언젠가 없어질 이 땅의 정의를 구현하고 애덕을 실천하는 이유, 즉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바로 이 땅의 삶이 내세의 삶과 직결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죽고 난 뒤의 내세를 제외하고 이 땅의 삶과 현세만이 전부라고 가르치며 오로지 이 땅에만 마음을 빼앗기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어도 천상과 영원한 세상의 복락과 멸망, 죽음 이후의 심판과 천국, 연옥, 지옥을 가르쳐야지 이 땅에만 시선을 두게 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4장 23~24절에서 하느님은 영이시고 영이신 하느님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따..

희망의 기도 2021.11.09

렙톤 두 닢

렙톤 두 닢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12,44)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사제들의 뜰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방인의 뜰은 성전의 마당으로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를 하실 때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을 몰아내셨던 곳으로 이방인들도 들어올 수 있었던 곳이고, 여인의 뜰은 성전에 들어가기 전의 홀에 해당하는 곳으로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장소이며, 이스라엘의 뜰은 성전 안의 회중석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의 남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며, 사제들의 뜰은 성전 안의 제단에 해당하는 사제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들 성전의 네 지역에서 헌금함은 바로 여인의 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

희망의 기도 2021.11.08

아주 작은 일

아주 작은 일 미국의 강철회사 회장 카네기의 일화이다. 그는 자기 수하에 탁월한 중역이 있었는데도, 찰스 스웹이라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았다. 찰스 스웹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고, 회사에서 맨 밑바닥 잡역부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청소를 하는데, 자기가 소임 받은 공장의 정원뿐 아니라 공장의 전체를 청소하는 것이었다. 카네기는 그를 정식 직원으로, 사무원으로 채용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비서로 삼았다. 어느날, 찰스 스웹이 밤늦게 집에 가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카네기가 묻자, "회장님, 회장님께서 언제든지 부르시면 제가 달려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고, 성실하고, 점점 더 잘하고, 한번도 어긋남이 ..

희망의 기도 2021.11.07

피정 후 우리가 가는 길

피정 후 우리가 가는 길 3박 4일의 피정을 마치고 원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간다. 각 조장과 조별 마지막 식사를 하고 떠나 보내는 것이 마치 이리떼 가운데 양들을 파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자신의 삶의 자리가 어디가 되었든, 주님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잘 살아 주길 희망한다. 지도 신부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면서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해 본다. 3박 4일의 피정은 지상에서의 타볼산 현성용과 같이 주님 은총과 지복의 편린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정 후 삶의 자리에로의 귀향과 복귀는 각자의 십자가가 놓여진 예루살렘으로의 입성과 같은 것이다. 3박 4일의 영적, 영성적 힘과 지혜의 말씀을 받아 이제 1년을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살아내야 한다. 꺼져가는 등불을 위해 필요한 끊임없는 기름은..

희망의 기도 2021.11.05

내 혼이 부끄럼없이

내 혼이 부끄럼없이 바람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

희망의 기도 2021.11.04

11월 위령성월에

11월 위령성월에 성령 대회 관계로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시내를 왔다갔다 하면서 눈에 띄는 것이 공동 묘지이다. 그리고 11월 1일 제성첨례(諸聖瞻禮;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All Saints Day; Hallowmas)전야인 10월 31일 Halloween를 보내기 위해 집집마다 귀곡산장처럼 많이 꾸며 놓았다. 인간의 원죄의 결과로 죄와 고통과 죽음이 우리네 삶의 필연적 한 부분으로 들어와서 참 괴롭다. 그러나 그 인간의 본성에 반(反)하는 죽음이라는 것을 이렇게 축제로 즐기며 승화시키는 서양 사람들의 기지(機智)는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일 수도 있다. 외국의 무덤은 참 평화롭다. 마을에 있고 집 가까이 있어 늘 공원처럼 돌아볼 수 있다. 사실 무덤에서 귀신들이 나올지 모르지만, 가장 조용한 곳이 ..

희망의 기도 2021.11.02

종말론적 자리 전도

종말론적 자리 전도 서판교로 강의가 있어 서울 장충동에서 버스를 타고 한남동에서 다시 분당 방향으로 낙생육교에 내리기 위해서 버스를 갈아탔다. 저녁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앉을 자리가 없다. 서서 가도 20분 정도 참으면 목적지 도착이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나름대로의 피곤함과 불편함을 어떤 지향을 가지고 봉헌했다. 버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사실 나의 경험으로도 버스만 타면 왜 그렇게 잠이 잘 왔는지? 잠을 잘잤던 기억이 난다. 직장인들과 학생들의 자는 모습이 천태만상이다. 입을 벌리고 자고 있으며, 머리를 뒤로 제낀 사람들과 머리를 숙인 사람들, 그리고 옆으로 고개가 떨구어진 사람들~ 모두가 피곤한 모습이다. 자가용을 타고서 서울 톨게이트를 이 시간에 빠져 나간다는 것은 무리이고, ..

희망의 기도 2021.11.01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루카14장10절) 루카 복음 14장 9절에서 '초대한 이'는 최종 심판자로서의 하느님을 상징한다. 이 비유는 마지막 하느님의 심판을 대비하여 항상 겸손할 것을 가르쳐준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마지막 심판 날에는 스스로 높이며 세상의 명예와 영광을 좇았던 자들은 수치를 당하는 반면, 스스로를 낮추는 자들은 단순한 자리의 이동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높아지는 영광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겸손의 도는 인간의 행동과는 반대 결과로 나타나는 역설적 하느님 심판의 원리를 밝히고 있다. '낮아지고'로 번역된 '타페이노테세타이' (tapeinothesetai; will be humbled)와 ..

희망의 기도 2021.10.31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 종교 사회학에서는 교의(dogma)체계, 계율체계(계명과 윤리 도덕), 의식체계(예배)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있으면 다 종교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종교(宗敎)란 절대자 하느님과 그 피조물인 인간과의 생명(生命)의 관계'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말하면, 자신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요 목적이신 절대자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종교가 아닌 것이다. 종교 다원(多元) 주의 사회에 몸담고 살면서 이런 말을 하면, 나를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할 줄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14장 6절이하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도 "그분말..

희망의 기도 202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