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적 자리 전도
서판교로 강의가 있어 서울 장충동에서
버스를 타고 한남동에서
다시 분당 방향으로 낙생육교에 내리기
위해서 버스를 갈아탔다.
저녁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앉을 자리가 없다. 서서 가도 20분 정도
참으면 목적지 도착이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나름대로의
피곤함과 불편함을 어떤 지향을 가지고
봉헌했다.
버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사실 나의 경험으로도 버스만 타면
왜 그렇게 잠이 잘 왔는지? 잠을 잘잤던
기억이 난다.
직장인들과 학생들의 자는 모습이
천태만상이다.
입을 벌리고 자고 있으며, 머리를 뒤로
제낀 사람들과 머리를 숙인 사람들,
그리고 옆으로 고개가 떨구어진 사람들~
모두가 피곤한 모습이다.
자가용을 타고서 서울 톨게이트를
이 시간에 빠져 나간다는 것은 무리이고,
강의 시간에 제대로 닿을 수도 없다.
그래서 버스만이 갈 수 있는
전용도로가 있다는 것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대다수 서민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사실 비행기도, 기차도 돈따라 자리와
클래스가 다르고, 대우도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타고
내릴 때에는 똑같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일년 365일 중에 해가
300일이 있다고 '선 시티'(Sun cit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여름에는 더워서 다니기가 힘들다.
그리고 일년중 4월은
모래바람(Dust wind)이 한달 내내
불어서 전설의 고향처럼 귀신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수풀이 울창한 미동부나 다른
경치 좋은 곳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는 겨울에 눈폭풍이 와서
꼼짝달싹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가을의 단풍이나 아름다운 경관에 대해
감사와 고마움을 못느끼고
그냥 삶에 찌들어 그런 걸 당연하게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았다.
하지만 사막에 살아서 늘 결핍을
체험하다 보면,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하늘은 늘 공평하다.
다만 자신의 주어진 처지와 환경에서
늘 감사하면서 기쁘게 살면 된다.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은 세상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하느님 나라는 양의 나라가 아니라
질의 나라이며, 하느님께서는 겉이 아니라
속과 내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주어진 좋은 환경 속에서
더많은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은
더많은 것들을 내어 놓아야 하고,
또한 함께 나누지 않으면,
하느님의 더 큰 심판이 나중에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루카 복음 16장 19절 이하의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에도
나오는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시며,
마지막 날 심판 때에는 종말론적
자리 전도가 일어남을
말씀하셨다(루카13,24.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다."
(루카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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