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2789

그대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합치시켜라

그대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합치시켜라 만일 그대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이 세상에서 평온한 삶을 누리고 싶거든 항상, 그리고 모든 일에서 그대의 뜻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합치시켜라. 과거의 잘못된 생활에서 지은 죄는 모두 그대가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이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앞으로는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11,26)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일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거든 곧 그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되새기고, 즉시 "아, 이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라고 말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어야 한..

성체가 당신 사랑의 천국이 될 것입니다

성체가 당신 사랑의 천국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존엄한 손에 빵을 들고 하늘을 향해 눈을 드신 다음, 그렇게 원하시던 시간에 대하여 성부께 감사를 드린 후 손을 들어 빵을 축복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외경심으로 가득 차서 그렇게 신비스러운 상징의 의미를 감히 물어보지 못하는 동안, 예수님은 이렇게 아름다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은 창조 때의 하느님 말씀처럼 강력합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내 피다." 사랑의 신비가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영원한 속죄의 성체, 영성체의 성체, 조배의 성체가 되기 위하여 다시 태어나실 것입니다. 하늘은 이 신비를 보고..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자비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자비 자비에는 지상에서의 자비와 천상에서의 자비, 인간의 자비와 하느님의 자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의 자비는 어떤 자비입니까? 가난한 이들의 비참에 관심을 갖는 자비입니다. 한편 하느님의 자비는 어떤 자비입니까? 의심할 여지 없이 죄사함을 베푸는 그런 자비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 인간의 자비로 베풀어 주는 모든 것은 하늘 본향에 도달할 때 하느님의 자비가 그것을 되돌려 줍니다. 하느님께서 성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은 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 안에서 버림받고 굶주리십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 아를르의 성 체사리우스 -

주님은 행복입니다.

주님은 행복입니다. 어떤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몹시 가난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집을 한채 사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동안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녀서 이제는 아담한 자기 집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지요. 그들은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조그만 집을 주세요. 그러면 저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요. 그들은 열심히 기도했고 열심히 일을 했으며 열심히 저축을 했습니다. 그래서 20년 만에 조그맣지만 아담한 집을 장만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행복했지요. 그들은 서로 꼬집으며 이게 정말 꿈일까? 사실일까?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감격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의 행복에 종말이 찾아왔습니다. 새로 집을 산 이 여인이 길을 가다가 몇 십년 만에 여고 동창생을 ..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마음이 착잡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가십시오. 복음을 읽으면 아버지의 뜻만을 찾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신데도 인간과 같은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약함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기 쉬운 길인 성모 마리아를 따라 가면서 그리스도를 본받읍시다. 그분 모성이 우리를 구하고 당겨줍니다. - 복자 G. 알베리오네 -

하느님 나라로 가는 이정표

하느님 나라로 가는 이정표 7월 둘째주 연중 제15주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루카 10.25-37) 하느님 나라로 가는 이정표 (윤행도 신부. 마산교구 경화동성당 주임) 오래전 마산교구에 있는 순교복자 성지 다섯곳을 혼자 도보 순례한 적이 있다. 거제도 윤봉문 요셉 순교복자묘소에서 출발하여 김해 진영의 신석복 마르코 묘소까지 200Km 남짓한 거리를 나흘 동안 걷고 또 걸었다. 당시만 해도 순례 안내책도 지도도 없고. 내비게이션도 없어 일반 지도와 도로 이정표에 의지하여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순교복자 묘소가 대부분 한적한 곳에 있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정표와 지도를 보며 한참을 걷다 보면 이상한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체력이 좀 있을 때는 투덜대며 돌아서 갔지..

성인들의 썩지 않은 스카풀라

성인들의 썩지 않은 스카풀라 성 알퐁소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이교인들은 스카풀라를 입는 것에 대해 조롱하곤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하찮고 시시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합니다." 그러나 역대의 여러 교황들이 그것을 승인했고 추천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카풀라 발현 25주년 이후 복자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은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무덤에 안장되기까지 했다. 그 뒤 600년이 지나 무덤을 열었을 때 그의 스카풀라는 아무 손상 없이 그대로인 채로 발견되었다. (복자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의 무덤) 구속주회의 창립자인 성 알퐁소 리구오리와 살레시오 수도회의 요한 보스코 성인은 가르멜 성모님께 대해 아주 특별한 신심을 가졌고 두 성인 모두 갈색 스카풀라를 착용했다. 그들이 죽은 ..

겸손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은 도하는 사람은 기도와 청원을 고요와 겸손 가운데 바쳐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면전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느님께 기쁨이 되는 몸 자세와 목소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뻔뻔한 사람이 항상 큰소리로 지껄인다면 겸손한 사람은 조용히 기도합니다. 더욱이 주님은 복음서에서 은밀하고 떨어진 곳에서, 심지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더 알맞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당신의 무한한 엄위로써 은밀하고 숨겨진 곳까지 이르시어 모든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그들을 보십니다. - 성 치쁘리아노 -

하느님의 영과 악마의 영

하느님의 영과 악마의 영 선한 영감을 알게 하는 뛰어난 표시 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받은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이다. 하느님의 영은 격렬하다 해도 부드러움과 우아함, 평화로움이 늘 함께한다. 하느님의 영은 맹렬한 바람이나 하늘의 벼락처럼 왔지만 사도들을 결코 쓰러뜨리지도 불안하게 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바람소리를 듣고 놀란 것은 잠시뿐이었고 곧바로 부드러운 확신에 차게 되었다. 반대로 악마의 영은 소란하고 거칠며 불안하다. 그의 제안을 하느님의 영감인 줄 알고 따라가는 사람들은 흔히 표시가 난다. 그들은 불안해하고 고집스러우며 자만에 차 있고 일을 벌이고 선동하는 사람들로서 열정이라는 구실로 모든 일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모든 이를 감시하며 각 사람을 꾸짖고 모든 일을 비난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영예를 지킨..

성체 - 하늘의 이슬

성체 - 하늘의 이슬 성체는 갈바리아에서 흘리신 성혈이며, 동시에 하늘의 이슬이다. 성체는 우리를 위해 치르신 대가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성체는 생명이며 또한 그 생명의 대가이다. 십자가도, 최후의 만찬도, 혹은 이 둘을 합친다 해도 성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 성체 안에 모든 것이 지속되며, 성체 안에 모든 인류의 희망이 걸려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사가 믿음의 신비라고 불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전체 교리 -아담으로 인한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교리-가 미사 안에 요약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갈바리아의 성극(聖劇), 곧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최고로 드러내 보이시고 인간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넘쳐나는 보상을 해 주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