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2789

나는 너의 길이다

나는 너의 길이다 성체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영성체와 성체에 대해 자주 묵상하는 경건한 영혼은 이 말을 즉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의 덕들과 생애 그리고 상태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조각물처럼 대합니다. 그분이 우리 죄를 용서하고 기도를 들어 주시기 위해서만 거기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성체 안에 살며 활동하십니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연구하십시오. 그분을 닮으십시오. 성체 안에서 그분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19세기 이전으로 돌아가 심오한 진리로 가득찬 복음을 읽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이 실제로 하신 다정한 말씀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오늘, 나는 ..

서품 기다리는 부제들의 소망 "겸손한 사제가 되겠습니다"

서품 기다리는 부제들의 소망 "겸손한 사제가 되겠습니다" 서품 기다리는 부제들의 소망 "겸손한 사제가 되겠습니다" 게시일 : 2022. 1. 21. CPBC 뉴스 오는 28일 서울대교구에 23명의 새 사제가 탄생합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겸손한 사제가 되겠다는 부제들의 다짐을 들어봤습니다. 남창우 기자의 영상 리포트입니다.

참된 생명과 생동감 넘치는 길-(예수, 생명의 문 -요한복음 묵상)

참된 생명과 생동감 넘치는 길-(예수, 생명의 문 -요한복음 묵상) 참된 생명과 생동감 넘치는 길 (예수, 생명의 문 -요한복음 묵상) 생명에 대한 갈망은 우리시대의 본질적인 갈망이기도 하다. 요한은 영적핵심을 상실하고 내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에게, 참된 생명과 생동감이 넘치는 길을 제시하려고 한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진리이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참된 실제를 만난다. 예수께서는 생명과 내적 생동감으로 영혼을 채워주심으로써, =인간을 생명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께서 우리 내면에 생명력이 넘치도록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생명에 참여할 것이다. 생명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신적생명을 가리킨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만이 신비가 아니라, 참..

지금 나는 자유로운가?

지금 나는 자유로운가? 지금 나는 자유로운가? (조철희 신부. 주문진성당 주임 영동 가톨릭사목센터 관장) 신학교 1학년 때는 외출이 허락되지 않는다. 열아홉에 따듯한 집을 떠나 엄격한 규칙을 지키며 제한된 공간 안에서 살아야 하는 신학교 생활은 그야말로 나의 자유를 억누르는 환경이었다. 2학년 이상 선배들이 주일에 외출을 나가 짜장면을 먹고 귀교하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래서 1학년 때 나의 꿈은 얼른 2학년이 되어 주일에 외출하는 것이었다. 짜장면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고 바깥세상이 그립고 궁금했다. 내가 신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은 토요일 끝기도 마치고 마리아홀에서 신학생들과 함께하는 영화 관람시간이었다. 그때 처음 본 영화는 톰 크루즈 주연의 `파 앤 어웨이..

범생이 콤플렉스

범생이 콤플렉스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범생이 콤플렉스 한때 천주교 신자들은 착한데 답답하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착해서 믿을만한데 융통성이 없어서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신자분들은 그런 성향이 강한 편입니다. 이런 성향은 전통적으로 신앙생활을 죄를 짓지 않는 삶이라 개념 짓고 산 탓입니다.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보느니 죄를 안 짓고 사는 게 더 마음편하기에 아예 죄 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의 근처에 가지 않아 이런 성향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성향을 범생이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복음을 보면 집나간 둘째 아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큰아들이 가진 콤플렉스가 범생이 콤플렉스입니다. 말 그대로 모범생으로 사는 사람들이죠. 얼핏 생각하면 바람직한 삶 같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길 위에서의 기도

길 위에서의 기도 길 위에서의 기도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가파르고 힘든 골목길을 헤매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나의 삶이 외롭고 고통 중에 있더라도 당신을 생각하기만 하면 어느새 굴뚝 같이 힘이 솟아오릅니다. 이 세상 그 누구에게서라도 감히 맛볼 수 없는 참된 기쁨을 당신을 통하여 비로소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으시면 나는 나홀로 어둠의 강물을 흘러갈 수 없음을 이 순간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를 더 낮추어서 겸손하게 사는 것도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나를 찾아 오시는 당신 앞에서 아기처럼 나는 깨끗해집니다. 빛으로 오시는 당신 안에 있을 때 나의 죄와 고통은 어느새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하나로 일치할 수 있는 ..

태생 맹인의 치유-(예수, 생명의 문-요한복음 묵상.)

태생 맹인의 치유-(예수, 생명의 문-요한복음 묵상.) 태생 맹인의 치유. (예수, 생명의 문-요한복음 묵상) 예수님께서는 병과 죄의 연관성에 대하여 병과 죄는 무관하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기 위해서입니다.”(요한9,3) 예수께서는 태생 맹인을 통해서 오직 믿음만이 실제로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예수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의 눈이 열리고, 자신의 진리를 볼 수 있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깨닫는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오셨다는 당신의 사명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서 맹인의 눈에 바르며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시..

인생은 단 한번의 추억여행

인생은 단 한번의 추억여행 인생은 단 한번의 추억여행 눈물겹도록 사랑을 하다가 아프도록 외롭게 울다가 죽도록 배고프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삶의 짐 다 내려놓고 한줌의 가루로 남을 내 육신 그래 산다는 것은 짧고도 긴 여행을 하는 것이겠지? 처음에는 나 혼자서 그러다가 둘이서 때로는 여럿이서 마지막에는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것이겠지... 산다는 것은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사람을 사랑하고도 아닌 척 그렇게 수백 번을 지나치면 삶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하겠지 아... 그때는 참 잘했어 아... 그때는 정말 아니었어 그렇게 혼자서 독백을 하면서 웃고 울겠지... 여행 끝나는 날에는 아름다운 여행이기를 소망하지만 슬프고도 아픈 여행이었어도 뒤돌아보면 지우고 싶지 않은 추억이겠지... 긴 아름다운 추억 여행 그래 ..

가야 할 목표를 알게 되면

가야 할 목표를 알게 되면 영적 단계를 미리 아는 것은 중요하다. 가야 할 목표를 알게 되면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밭을 잘 갈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와서 아버지 대신 소에 쟁기를 매고 밭을 갈았다. 그런데 한 줄을 다 갈고 뒤돌아보니 밭이 삐뚤빼뚤하게 갈려 있었다.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최선을 다해서 밭을 갈았는데 엉망이네요. 아버지처럼 반듯하게 갈 수 있는 비법 좀 가르쳐 주세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이놈아! 너는 소 엉덩이만 보고 가니까 그런 거다. 나는 늘 밭 건너편에 있는 기준점을 향해 그것을 보고 간단다. 그래야 똑바로 나갈 수 있는 법이야." 헤매는 이들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이야기 속 아들처럼 소 ..

내 마음의 하늘에는 날마다 무지개가 뜹니다.

내 마음의 하늘에는 날마다 무지개가 뜹니다. 내 마음의 하늘에는 날마다 무지개가 뜹니다. 기쁨이 웃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웃음이 우리를 기쁘게 만듭니다. 슬픔이 눈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이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행복이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명예가 정의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가 우리를 명예롭게 만듭니다. 재물이 건강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이 우리를 부유하게 만듭니다. 지위가 덕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덕망이 우리를 높아지게 만듭니다. 평화가 믿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우리를 평화롭게 만듭니다. 새벽이 태양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 새벽을 찬란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