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멀고 험하고 좁은 길

수성구 2021. 11. 14. 04:56

멀고 험하고 좁은 길

고센 땅을 떠나 광야 길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갈래 길이 주어진다.

 

당시 고센 땅 '라메세스를 떠나 수콧으로 향한'(탈출12,37)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위

'지중해 연안길'이라는 '쉽고 가깝게 갈 수 있는 길'과 '홍해 광야길'이라는 '더 멀고

험한 길'이 주어진다.

 

'지중해 연안길'은 수에즈 운하 북단을 지나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팔레스티나 서남단의

도시 '가자'(Gaza)에 이르는 해안길(via maris)로서 장애물이 없으면 목적지에

한달 내에 도착할 수가 있는 길이다.

 

'홍해 광야길'은 홍해(갈대바다)를 따라 남방 시나이 광야로 가는 길로 멀고도 험한

길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탈출기 13장 18절을 보면,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백성을 갈대

바다에 이르는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이유가 탈출기 13장 17절에 나오는데, '지중해 연안길'에는 필리스티아인들

(블레셋 족속들)이 진치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그들과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들이 혹시라도 겁이 나서 다시 이집트로 되돌아 갈 수도 있음을

하느님께서 아셨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주님께서 '쉽고 가까운 길'이 아니라 '멀고 험한 길'을 택하신 이유가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전지'(全知; omniscientia)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예지(豫知)하셔서 가장 좋고 최선

(最善)인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이다.

 

마치 마라톤의 미덕(美德)이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완주(完走)에 있듯이 중도 포기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달하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적합한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의 땅'이라는 '목표'가 확실하더라도, 중간에 고난과 역경, 시련이 발생하면

그 어떤 약속도 망각하거나 쉽게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탈출기 13장 19절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어른인 '요셉'의 최후의 유언을 따라 끊임없이 '요셉의 유골을 보게

하는' 시청각 교육도 겸비하여 그들을  끌고 갔던 것이다.

 

그런데 민수기 14장 34절을 보면, 가나안 땅의 정찰대의 보고(민수13,25~33)가 

여호수아와 칼렙을 빼고는 모두가 하느님의 명령에 부정적이고 불순종하였기에, 

정찰한 사십일을 그 날수대로 하루를 일 년으로 해서 사 십년 동안 죗값을 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지중해 연안길'로 못가는 이유가 또 하나 더 첨가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하느님께서 광야 40년을 허락하신 것은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든지 이집트에서처럼, 새로운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또다시 이교도들의

수많은 우상과 미신을 만날 수 있어서 과거의 악습과 죄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광야에서 오로지 옆도 뒤도 아니고 모세를 통해 주

하느님만 바라볼 때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아니, 하느님의 뜻이 들어있는 계명과 율법에 충실하여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만, 먹고사는 모든 문제가 온전히 해결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황량하기 짝이 없는 험하고 먼 광야길을 택하셨던 것이다.

 

'부족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어 '민족 공동체'로 만드시고, 

시나이산 계약을 통해 '계약공동체'로, 그리고 계약의 산물인 '계명'을 통해 만유(萬有)

위에 주 하느님만을 섬기는 '예배공동체'로 만드시기 위해 광야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만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신약의 새로운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광야의 그 체험을 통해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며, 감사와 찬양의 생활을 해야 천국으로 갈 수 있는지를 배우게 하는 데도 목표가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과 고통, 시련과 역경, 여러 장애물 앞에서 우리는 한숨을 쉬고

불평하며 한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투명한 미래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한치 앞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더 사랑하시는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의

어느 자리에 앉게 될 지도 다 아시고 있는 상태에서 지금의 이유있는 고난을 허락하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불평할 이유가 없다.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5장 16~18절의 말씀처럼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詩)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난 한 숨 지으며 말하게 되겠지 두 갈래 길이 숲 속에 나 있었다고.

 그때 난 사람들이 적게 여행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은 달라졌다고."

 

내가 지금 사막에서 사는 이유도 '잃어버린 감사의 영성을 찾기 위해서'이고, '주님과의

올바르고 돈독한 영적 관계를 더 잘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설교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마태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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