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도 조금 무관하게....
The church is a little irrelevant.
오늘은 아침에 소나기가 그리도 퍼붓곤 하던데
지금은 비가 다소 소강상태라 봅니다.
아침에 소나기가 퍼부울때는 오늘 성당에를 가지 말까 해서
그래도 마음 먹고는 성당에를 갔다.
When the showers were pouring in the morning,
I decided not to go to the cathedral today, but I went to the cathedral.
날씨가 많이도 우울할 때는 하루쯤 한 이틀쯤 빠져도 되는데
하면서 나의 목적에 마음을 한씨름한다.
난 너무 성당에 올인 하는 것도 문제가 되곤 하는데 가끔은
성당도 뒤로 하고 싶을 때가 더러는 있다.
I often have a problem with being all over the cathedral,
but sometimes I want to leave the cathedral behind.
그래서 이젠 너무 올인 하는 것도 병적인 것이 되어서 그렇게
성당에는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면 가지 않는게 나의 심성을
잡는다고 본다.
사람을 상대 하는 것이 많이 피곤한 요즘 시대에 우리도 많이 고달프지만
우리 성당에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사무실 직원들이 우리 신자를
대하기가 많이들 고달프리라 한다.
나라도 한사람 성당에 안가주는게 때로는 도와 주는일인거라 본다.
I do not think it is sometimes helpful to not go to one cathedral.
그래서 이제는 성당을 조금 멀리 할까도 싶다.
근데 오늘 우리 삐돌이 신부님이 강론 마지막에 이랫다, 저랫다. 하지 말라고 한다.
But today our peduncle is at the end of the lecture, it is. He says not to.
근데 내가 이랫다 저랫다 하는게 아니고 머리가 좀 복잡해 지는거 같아서그런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한다고 본다.
I think that everyone wants to be loved as people live.
근데 그 사랑이 조금 과도하면 머리가 복잡해 지는건 물론이고
자신의 세계에 탈피 하고픈 마음이라 한다.
난 오늘도 아침에 비도 너무 많이 오고 안나 보고 성당에 가지 말까 하다가
간건데 역시나 가지 않는게 오늘의 정답인거 같다.
그래서 세상의 복잡한 가운데에서 나라는 존재를 밀어 내고픈 마음이라 한다.
So in the midst of the complex world, the country is said to be willing to push its existence.
그러곤 아침에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면서 나름 그래도 십자가의
기도는 했더란다.
그러곤 미사를 지내면서 우리 레지오 부단장님 말지나 형님이 우리
삐돌이 신부님 무슨 질문을 그렇게 많이 하나 라고 하던데 우리 삐돌이
신부님은 질문이 자기의 부족함을 메꿀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오늘은 까사미아에 간건데 우리 케롤린은 요즘 제 정신이 아닌거 같다.
이자리 저자리를 떠돌아 가면서 자기의 어떤 성경과 무엇을 얘기를 하나 본데
내가 보기엔 마음이 잡히질 않아서 우왕좌왕 하는거 같아 보인다.
see what I have to say with my Bible as I wander around the place,
and I do not seem to be able to catch my heart.
그러고는 난 오늘은 기분이 좋다 말다 한다.
왜냐면 나의 존재가 이젠 희박해져서 성당이 아니라도 난 그렇게
보람과 은혜로움에 마음을 다한다고 본다.
Because my existence is now thin and I do not think it is a cathedral,
but I think I am so rewarded and graceful.
예전 같이 있어도 없는듯이 없어도 없는듯이 살아 보려 한다.
근데 이번주 토요일 부터 기도회를 한다구 한다.
이제 나도 날 조금 내려 놓고 싶다.
기도회한다고 성당에 가는것도 무리수 이고 한데 난 가급적 성당 가는 것은
피하고 싶다.
오늘의 독서에는 요셉이라는 꿈쟁이가 형들에게 미음을 사서 노예로
팔려가서는 파라오에게 잘 보여서 재상이 되곤한다.
In today's reading, a dreamer named Joseph buys a rice to his brothers and sells
them as slaves, and he is seen well by Pharaoh and becomes a re-election.
그래서 나라가 기근이 들어서 이집트인들에게 곡식을 팔고는 하는데 요셉의 형들에게
이런 저런 조건을 내 걸어서 곡식을 내준다.
그러면서 우리 삐돌이 신부님이 그래도 아무리 미워도 형제는 형제라고 한다.
However, no matter how hateful our priest is, the brother is said to be a brother.
그래서 혈육의 정이 무섭단다.
그러고 복음인데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시기 위해 비천하고
멸시받는 이들을 선택하셨다. 그리고는 당신께서 모든 질병과 병을 고쳐 주셨듯이,
제자들에게도 치유 권한을 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권능으로 그 일을 해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도록 열두 사도를 선택하신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구약을 완성하시는
예수께서 새로운 백성을 이끌어갈 열두 명을 뽑아 사도로 부른 것으로 본다.
그런데 제자들의 신분을 보면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의아한 선택이셨다.
어부, 세리, 열성 당원과 같은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로 볼 때 지도자급에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것을 잘 아시고 꿰뚫어 보시는 주님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제자들로 선택하셨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과 하느님 지혜의 차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실 때, 지금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를 어떤 사람이 되게 하여 그가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시고 그들을 선택하셨다.
즉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장차 무엇을 해나갈 수 있는가를
보고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다.
즉 자신의 모든 능력을 겸손되이 하느님을 위해서 쓸 줄 아는 사람을 택하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신다. 그러면서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5절) 하신다.
이 말씀은 다른 민족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실과 생활양식을 제자들이 피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치유해 주셨다. 이 말씀 바로
이단자들의 집회에 가지 말라는 경고이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7절)
어떤 사람이 복음이 선포되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채운다고 하여도,
이제는 세상이 그것을 선포할 것이다. 복음이 전해지면 세상은 파멸하고 만다.
그 세상은 하느님의 뜻과는 반대로 살아가려 하므로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Today, I am spending my da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the Virgin.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Thank you, healthy, I love you.
'백합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서 하는 영어 회화법 & 미소가 가득한 날A Day full of English Painting Methods & Smiles (0) | 2021.07.09 |
---|---|
살아 간다는게 천국이라고 한다Living is called heaven. (0) | 2021.07.08 |
긴 장마에 산수가 수학이 되다.arithmetic becomes mathematics in the long rainy season. (0) | 2021.07.06 |
치과 치료& 대선에는 누가 (0) | 2021.07.05 |
증권 & 레지오 단원 가입joining securities & regio members (0) | 2021.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