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숨을 드리죠
제 목숨을 드리죠!
(엠마오로 가는길에서 송현신부)
기원전 6세기경.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은 바빌로니아를 비롯하여
소아시아와 동방의 여러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적군 대장의 온 가족을 포로로 붙잡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키루스가 적장에게 물었습니다.
너에게 자유를 준다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적장이 대답했습니다.
제 재산의 절반을 바치겠습니다. 대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너의 자식도 자유롭게 해준다면? 남은 나머지 절반의 재산도 다 드리겠습니다.
이제 더이상 줄 것이 없겠거니. 생각하고서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의 아내도 풀어준다면 무엇을 주겠느냐? 적장은 곁에서 죽을상이 되어있는 아내를 향해
미소짓더니 이내 대답했습니다. 제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놓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사람이 원래
지금 크기의 두 배였으나 너무 크고 교만해서
하느님이 절반을 갈라 남녀로 만드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완전해지려면 자신의 분신을 찾아 다시 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자와 여자는 여러 면에서 상호 보완 관계이기에 서로 자신의 짝을 찾아야만
행복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은 결혼은 의무요. 두 번 결혼은 어리석은 일이며.
세 번 결혼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네덜란드 속담이 무색해질 정도로
결혼이 한없이 가벼워지 오늘날입니다.
물론 서로가 어긋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20여 년이상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또한 어느 누구도 완벽한 존재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조각가가 모난 돌을 다듬어 조각상을 완성해가듯. 상대방을 통해
자신을 다듬어가는 하나의 예술활동이 바로 결혼 생활입니다.
결혼은 애정의 구속이 아니라 애정의 보장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 아니라 인정과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창조 행위힙니다.
그러기에 결혼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요 그 최정상으로 불립니다.
하느님이 계획하시고 인간이 동의한 결혼은 두 인격이 하나로
결합하는 아름다운 탄생이며 주님께서 친히 머무시는 거룩한 터전입니다.
신앙인은 혼인 자체를 경건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형성되는 가정 공동체도 마땅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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