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리라 믿습니까?
건너가리라 믿습니까?
(엠마오로 가는길에서 송현신부)
1920년. 미국의 줄타기 명수였던 불론딘은 대담한 줄타기 묘기로 사람들을 자주 감동시켰습니다.
그이 가장 뛰어난 곡예는 미국과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보호 장비 하나 없이 묘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여지없이 폭포 아래로 떨어져 죽을 것입니다.
그날도 폭포 위에서 그 위험천만한 곡예를 무사히 끝냈습니다.
모여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불론딘의 관객 가운데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제가 어깨 위에 사람 한 명을 얹고서도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당신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불론딘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기 어깨 위에 올라서기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관객은 기겁을 하며 도망쳤습니다.
결국 그 관객의 믿음은 생각과 말로만 그쳤을 뿐 행동으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진정 누군가를 믿은다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믿음은 행동을 통해 비로소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만이 영원한 생명을 안겨주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고 또 외면하는지요.
치유 은사를 받은 어느 수녀님이 고백한 내용입니다.
기적의 체휴을 체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당에 모인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죽을 힘을 다해 하느님을 부른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혼신의 힘을 다해 하느님을 부르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아무런 주저 없이 주님을 애타게 불렀던 사람들이 치유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을 구원해주실 분으로 굳게 믿으며 매달렸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애절하게 간청하는 열정과 목마른 절실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없이도 살아가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부유해서 자기 인생에 가난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솝의 말처럼 자만심은 자멸을 부를 뿐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가난을 되찾아 영적인 눈을 뜨기 위해서는
자만과 오만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움 없이는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도 없고
영생을 얻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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