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천통
1월 첫째주 주님 공현 대축일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마태 2.1-12)
편지 2천통
(송동림신부. 제주 신성여자중학교 교장)
나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교장 선생님과 대화한 기억도.
교장실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 그리 잘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도 아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교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혼자 다짐한 것이 있다.
교장실 문을 항상 열어놓고. 모든 학생을 적어도 한 번은 초대하고.
진로와 관련해 모두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2015년부터 그 약속을 계속 실천해 지금까지 2천통의 편지를 썼다.
1학년. 2학년은 개학과 동시에 반별로 찾아가 내 이야기도 하고 질문. 건의도 받는다.
3학년들은 그룹을 지어 교장실로 초대해 상담하는데 미리 받아놓은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내가 발견한 장점과 잠재력을 이야기해 준다.
상담하는 동안 특이한 점이 느껴지면 메모를 해뒀따가 2학기때 종합해 한 장씩 손편지를 쓴다.
교장 선생이면서 사제로서 바라는 것들. 예를 들면 어디에 살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 사람과 생명을 존중했으면 하는 바람.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는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교회에서는 또 하나의 성탄 대축일이라고도 한다.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간 것을 기념하는 날이자.
빛 자체이신 예수의 탄생이 세상에 드러났음을 기념한다.
주목한 사실은 구세주의 탄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보잘것없었던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는데. 정작 메시아 탄생을 기다렸던 유다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었던 이방인 동방 박사들은
예수를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먼 길 마다 않고 별의 인도를 받으며 마침내 예수를 만난다.
매년 내가 있는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보면 예수님을 아는 학생 비율이 10% 남짓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부님과 수녀님을 본다는 학생들도 많다.
미지에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설렘이 있는 학생들이 점점 진리에 관심을 갖고.
진리를 찾아 길을 나서고. 나아가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학생들이 많아져 가길 소망해본다.
하느님께 받은 은혜를 같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나지만.
조금이라도 하느님을 의식하고자 하는 나의 몸짓이.
학생들로 하여금 진리를 찾아 나서게 할 수도 있고.
예수께 관심을. 교회에 호감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종종 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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