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시지프스의 신화

수성구 2021. 11. 27. 06:18

시지프스의 신화

 

그리스 터어키 성지순례 중에 코린토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시지프스 신화의 배경이 된 산(山)앞에서 시지프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데

신화에 나오는 저 많은 신들의 이름을 어떻게 다 외워 이야기 하는가?

나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받아 적다가 포기해 버렸다. 오늘 지나온 순례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때의 생각이 나 몇 자 적어본다.

 

어느날 <시지프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한다. <시지프스>는 딸 걱정에 한숨을 내쉬고 있는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신(降神) <아소포스>를 찾아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면 딸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한다.

 

시지프스는 그 당시 <코린토스>를 창건하여 다스리고 있었는데, 물이 귀해 백성들이

고생을 하므로 <코린토스>에 있는 산에다 마르지 않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물줄기를 산위로 대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로지 딸을 찾아야겠다는 일념뿐인

<아소포스>는 <시지프스>의 청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래서 <시지프스>는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섬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고,

<아소포스>는 그곳에 가서 딸을 <제우스>에게서 구해냈다.

 

자신의 이런 비행을 엿보고 일러바친 이가 <시지프스>임을 알게 된 <제우스>는 저승신

<타나토스>(죽음)에게 당장 <시지프스>를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시지프스>는 <제우스>가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타나토스>가 오자 그를 쇠사슬로 묶어 감옥에다 가두어 버린다. 이제 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묶여 있으니 당연히 죽는 사람도 없어졌다.

 

명계(冥界)의 왕 <하데스>가 어처구니없는 이 사태를 <제우스>에게 알렸고,

<제우스>는 호전적이고 잔인한 전쟁신 <아레스>를 보내 <타나토스>를 구출하게 했다.

<시지프스>는 전쟁신인 <아레스>에게 대들었다가 온 코린토스가 피바다가 될 것 같아

순순히 항복하면서 <타나토스>에게 끌려간다.

 

그런데 <시지프스>는 끌려가면서 아내 <멜로페>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릴 것이며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은밀히 말한다.

 

저승에 당도한 <시지프스>는 <하데스>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아내가 저의 시신을

광장에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것은 죽은 자를 수습하여 무사히 저승에

이르게 하는 지금까지의 관습을 조롱한 것이며, 이것은 명계의 지배자이신 대왕을

능멸한 것이니, 제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아내의 죄를 단단히 물은 후 다시

돌아오겠으니, 저에게 사흘간의 시간을 주십시오." 하고 읍소한다.

 

<시지프스>의 꾀에 넘어간 <하데스>는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었고, <시지프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영생불멸하는 신이 아니라 한번 죽으면 그뿐인 인간인 그로서는

이승(현세)에서의 삶이 너무나 소중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데스>가 몇 번이나 <타나토스>를 보내어 을러대기도 하고 경고도 주었지만,

<시지프스>는 그때마다 갖가지 임기응변과 말재주로 체포를 피한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롭고 약삭빠르다 하더라도 어떻게 인간이 신을 이길 수 있겠는가!

마침내 <시지프스>는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 명계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명계에서는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데스>는 명계에 있는 높은

바위산을 가리키며 그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고 했다.

 

<시지프스>는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는데,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려 올려야 했다. 왜냐하면, <하데스>가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지프스>는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겁의 형벌을 받은 것이다. 

 

나는 어느 책에서 이 <시지프스>의 형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프란치스카 로마나

성녀가 본 <연옥>의 형벌이 생각났었다. 

 

물론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겠지만, <얼음못>,<역청못>,

<금은 쇠붙이못>에서 36명의 천사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연옥의 영혼들을 집어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 말이다. 그리고 연옥도 세 지역으로 나뉘어지는데, 지옥에

가까운 곳일수록 교회안에서 더 영향을 미치는 높은 자리의 책임을 맡은 고위

성직자들이 더 크고 뜨거운 고통을 맛보는 장면 말이다.

 

끝없고 지루하며 똑같은 형벌의 연속~

이것은 정도의 문제이지 연옥과 지옥의 형벌이리라 여겨진다.

 

공산주의 시대에 소련 소비에트 공화국에서도 자신들이 말하는 죄수들에게도 이런

유사한 형벌을 주었다고 한다. 그 삭막하기 짝이 없고 춥고 을씨년스런 시베리아 동토를

곡괭이로 어렵게 구덩이를 파게 한다. 그렇게 힘들여서 파면 다시 묻고, 묻으면 다시 파게 한다.

 

이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달 두달, 일년 이년~한도 끝도 없는 세월 동안 이런 형벌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목적이 있을 때 기꺼이 수고를 한다. 그 언 땅을 팠을 때 그 속에 뭔가가

인간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매장되어 있다든가, 그 땅속에 매설된 가스 배관이 터져

주변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그걸 찾아내야 한다든가 이러면 모르겠지만,

이런 목적이나 의미가 없는 형벌의 삶은 마침내 사람을 미쳐버리게 할 것이다.

 

그렇다. 형벌이란, 죽고난 뒤의 형벌이란 살아 생전에 자신이 저지른 죄값,

이승(현세)에서 다 치루지 못한 죄값을 치루는 것이다.

 

이미 인간의 자유의 시험 기간이라는 이승(현세)의 삶은 다 지났으니 더 이상 어떤

목적도, 가치도, 의미도 추구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는 잘한 것에 대해서는 영원한 상급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영원한 형벌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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