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연옥도리

수성구 2021. 11. 26. 04:30

 연옥도리

연옥(煉獄; Ecclesia purificans; purgatory)은

세상에서 죄를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에 의해서 죄를 정화한다고 하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상태 혹은

장소를 말한다.

 

대죄(大罪)를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지만,

대죄의 사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잠벌<暫罰; 지옥의 영벌(永罰; 영원한 벌)에 

대조되는 지상과 연옥에서 잠정적인 기간

동안 겪는 잠정적인 벌>이 남아 있거나

소죄(小罪)를 지은 의인의 영혼은 그 죄를

정화함으로써 천국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이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정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 및 체류지가 연옥이다.

 

 

가톨릭의 연옥 도리는

 하느님의 성성(聖性), 공의(公義),예지,

자비를 명백히 보여주며,

인간을 절망과 윤리적 경솔함으로부터

지켜주고, 더군다나 죽은 사람도

도와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위로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고대와 중세의 카타리 파나 

발두스 파 등등 이단자들은

죽은 자를 위한 전구나 연옥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마르틴 루터는

 "연옥론 철회"(1530)에서 연옥을

부정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연옥에 대한 가르침을

 공적으로 정의내린 것은

리옹 및 피렌체의 합동 공의회

(1274년 및 1439년),

그레고리오 13세 및 우르바노 8세의 신경,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에 반대하여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였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유한한 삶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시험하는 기간이 종료되고,

내세에서는 더 이상 

공덕을 쌓을 수 없기 때문에,

연옥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고통을 즐겁게 수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유한적인 벌을 치루면 확실하게 

정화되는 것이다.

 

연옥에서 겪는 고통은 지옥에서처럼 

실고(失苦)와 각고(覺苦)가 있다.

 

실고(失苦; poena damni)는 하느님을

상실하고 잃어버린 고통을 말한다.

지선(至善)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생명과 사랑이신 하느님과 격리되어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대죄로 말미암아 겪는 

지옥 영벌(永罰)의 가장 크고 영원한 

고통이며, 연옥은 이 고통이

 잠정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각고(覺苦; poena sensus)는 

말그대로 감각적으로 느끼는 고통이다.

마태오 25장 41절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처럼

 뜨거운 불 속에서의 고통이다.

신학자들은 지옥이나 연옥에는 

세상의 불과는 전혀 다른 불, 

초자연적 불이 실제로 있다고 말한다.

다만 연옥은 지옥이 영원한 불의

고통인 것에 비해 잠정적이므로

이 고통이 끝나면 천국으로 가기에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연옥의 고통이란 

모든 사람에게 동일 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죄에 상응한다.

그 고통의 기간이나 엄중함도 

지상 교회의 신자들의 기도와 선업(善業)

즉 신자들의 전구에 의해 단축

또는 경감된다.

 

그리고 연옥의 영혼들은

 하느님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므로

고통이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연옥의 영혼이 지상의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하지는 못하며,

또한 지상의 일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공심판 뒤에 연옥은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만일 공심판이 닥친다면,

하나 하나의 영혼에 있어서의 

그 벌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은 

형벌의 질적 차원인 강도(세기)에 의해 

결정되리라고 본다.

 

연옥을 암시하는 성경 구절은 

마카베오 하권 12장 40~45절, 

집회서 7장 33절, 토빗기 4장 17절, 

마태오 복음 5장 22~26절과 12장 32절, 

루카 16장 19~31절,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3~18절, 필리피 2장 10절 이하, 

묵시록 6장 9~11절이다.

 

마카베오 하권 12장 40~45절에는 

전사자들을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죽어서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이렇게 죽은 이들을 위한 

속죄 제물을 바칠 수 있는 것이지,

죽은 이들이 이미 지옥에 있다면

 이러한 속죄 제물을 바치고 

죄를 완전히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며

 간청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2마카12,42.44.45참조).

 

집회서 7장 33절에는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호의를 베풀고

죽은 이에 대한 호의를 거두지 마라."는

 말씀이 있다.

바로 여기서 죽은 이들에 대한 호의는 

바로 연옥 영혼들에 대한

애덕의 기도와 속죄의 제사를

 의미한다고 본다.

 

토빗기 4장 17절에는

 "의인들의 무덤에는 빵을 풍성하게 내놓되

죄인들에게는 주지 마라."는 말씀이 있다.

이미 지옥간 죄인에게는 빵을 내놓지 말고, 

정화의 과정을 마치면

천국에 갈 의인들에게는 빵을 풍성하게 

내놓아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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