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 후 우리가 가는 길
3박 4일의 피정을 마치고 원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간다. 각 조장과 조별 마지막
식사를 하고 떠나 보내는 것이 마치 이리떼 가운데 양들을 파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자신의 삶의 자리가 어디가 되었든, 주님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잘 살아 주길 희망한다.
지도 신부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면서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해 본다.
3박 4일의 피정은 지상에서의 타볼산 현성용과 같이 주님 은총과 지복의 편린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정 후 삶의 자리에로의 귀향과 복귀는 각자의 십자가가
놓여진 예루살렘으로의 입성과 같은 것이다.
3박 4일의 영적, 영성적 힘과 지혜의 말씀을 받아 이제 1년을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살아내야 한다.
꺼져가는 등불을 위해 필요한 끊임없는 기름은 각 본당의 기도 공동체를 통해 받고,
자신의 골방에서의 기도와 말씀 묵상과 선행의 실천을 통해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의 경우, 기도가 잘 안되거나 삶이 조금 힘들게 느껴질 때는 항상 묵주기도를 가장
먼저 한다.
묵주기도를 하다보면 은총을 받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면서 마음이 정리가
되어 일상의 영성 상태로 돌아 오고, 주님께 대한 충성과 열정을 되찾게 된다.
카나의 혼인 잔치상에서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이 집에 술이 떨어졌다고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아직 제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시고서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행하신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당신 신성(神性)으로 무엇을 하실지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당신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기적을 베푸신 것은 성모님을 통해서 청하면 하느님의
때도 변경되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도 당신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를 상징하는 사도 요한에게 성모님을 어머니로 주시면서 그 어머니를 통해서
당신께 오라고 하신 것이다.
사막에서의 삶에 흥을 불어 넣기 위해 늦은 단풍도 보고 아는 신부님을 만날 겸, 동부로
날아와 조금 여유있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미 떨어진 낙엽들, 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는 잎파리들을 보고 훨씬 차가운
공기를 마신다.
"나는 들짐승이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얼어붙은 작은 새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질 때 그 새는 자기 존재에 대해 슬퍼해 본 적도 없으리라."는 D.H. 로렌스의 글을
읽게 된다.
사람만이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지, 동식물은 자연의 순리와 섭리에 순응한다.
차를 타고 식사를 하러 숙소로 가는데, 길거리에 사슴인지 무엇인지 차에 바쳐 죽어
있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천상 본향에 가야만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 생활, 이 땅이 아닌 하느님께 인정받는 삶이 되기 위해, 또 다시
하늘을 바라보면서 묵주기도를 바친다.
11월 위령성월은 죽음을 통해 한번 밖에 없는 귀한 생(生)에 대한 묵상을 하도록
계절의 변화들이 도와준다.
을씨년스런 공기와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가녀린 잎들과 길바닥에 마구 뒹굴며 밟히는
낙엽들과 누런 잔디들이 이제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주님을 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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