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성령 안에서 성장

수성구 2021. 9. 27. 04:18

성령 안에서 성장

며칠 전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를 보다가

마침기도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전능하신 천주, 만선의 근원이시여,

주를 사랑하는 정을 우리 마음에 심으시고

우리 신심을 길러 주시어,

선한 것을 자라게 하시며,

자란 것을 자애로이 지켜 주소서"

 

이 기도문에서 주를 사랑하는 정을

심어주시는 분도, 신심을 길러 주시는 분도,

선한 것을 자라게 하시며

자란 것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는 분도

모두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고 잠시 그 말씀에 머물렀다.

 

"주님께서 다 주셔야 하는데,

그걸 받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죄와 죄의 기회를 피하며

은총의 지위를 잘 유지해야 되지만,

<성령충만>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와 성사 생활, 말씀 공부와 묵상을

해야 하고 기회가 닿는 데로

은사자들을 통해 안수를 받아야 한다.

 

에페소서 5장 18절에 나오는 데로

"성령으로 충만해 지십시오" 에서

'충만해 지십시오'(충만을 받으라)에

해당하는 '플레루스테'(plleruste)는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고,

'성령으로'에서 '으로'에 해당하는

전치사는 '~안에서','~에 의해'라는

뜻의 '엔'(en)이다.

 

말하자면, "너희는

성령에 의해 가득 채워져라"는 뜻이다.

그리스어에서 명령형의 현재 시제는

<행위의 계속성>을 강조하므로

즉 <성령충만>은 일시적이거나

일회적인 행위로 그쳐서는 안되고,

항상 지속되어야 함을 나타내기 위해

현재 시제가 쓰인 것이다.

 

이 수동형의 문장을

능동형으로 바꾸어 보면,

"성령께서 가득차서 너를 주관하시도록

하라"(Let the Holy Spirit fill and

control you)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삶을

온전히 이끌어 가시도록

삶의 주권을 성령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

<성령 충만>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문이 명령문이라는 사실은

<성령충만>이 선택 사항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이루어져야 하는

필수 사항이므로, 그리스도인은

매일 매일 성령에 사로잡혀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콜로새서 3장 1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라는

말씀에서도 동사는

모두 현재분사 명령형 시제로

쓰여져서, 이 모든 것이

일시적이거나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지속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성령충만>도,

<말씀 공부와 묵상>와 <찬양>도

끊임없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고,

그럴때 피정때 받은 은혜가

더욱 더 성장하고 충만해지며 활성화

되어 간다는 것이다.

 

베드로 후서 3장 18절에 나오는 데로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라는

말씀을 살아야 된다.

 

또한 히브리서 6장 1절~6절(ㄱ) 의

말씀도 함께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그 기초는 곧 죽음의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아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또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힘을 맛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회개하도록

만들 수가 없습니다."

 

 

완덕 생활이나 영신 생활에서

중도의 멈춤이나 포기는 곧 퇴보라는

등식을 영성신학에서 가르친다.

 

히브리서 6장 11절과 12절의 말씀대로

게으르지 말고 성실해야 하며,

믿음과 인내와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한결같은 열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나는 하루 하루 일상의 삶 속에서

철칙처럼 지키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아침 봉헌과 기도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결코 컴퓨커나 TV를

켜지 않으며, 결코 전화를 걸지 않는다.

물론 사람의 생명이 오고가는

긴급한 상황과 예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철저히 하느님께 유보된 시간이요,

하느님을 공경하고 흠숭하며,

내 신앙과 충성과 사랑을 드리는

시간이다.

 

수도원에서 공동 생활을 할 때에는

종소리따라 움직이면 되지만,

이곳 사막에서 혼자 떨어져 살면서도

이것을 철저히 지켜야만

나의 하루 하루가 하느님 중심의

봉헌된 삶과 영성 생활이 된다.

 

나는 새벽 기도시간인 2시간 30분 내지

3시간 즉 하루 시간의 십일조가 넘는

이 기도 시간을 건강이 허락하는

죽는 날까지 철저히 봉헌하기로 다짐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성체성사를 통해

성령의 은총과 은사를 받고,

끊임없이 성령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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