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방패
중국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이 창은 예리하기로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창이나 칼로도 꿰뚫지
못한다.'고 자랑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네의 창으로써 자네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상인은 대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나왔다.
矛(세모진 창 모), 盾(방패 순)이라는 단어인데, 앞 뒤가 안맞는 이야기나 행동을
지적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의 전쟁에 적용되는 단어와 개념들은 영신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에페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라고 사도 바오로가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방패와 칼에 관한 이야기가 에페소서 6장 16절과 17절에 비유로 거론된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방패와 칼이나 방패와 창은 같은 개념이다.
칼이나 창은 그것으로 막기도 하지만 공격의 무기다. 공격이 최상의 수비라는 말도
있지만, 사탄과 그 졸개들과의 싸움에서 그들을 공격해서 무찔러 제압하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고 살고 선포하고 증거해야 한다.
거짓말의 아비요 화신인 마귀들이 하느님의 진리와 진실의 말씀으로 꼼짝달싹 못하고,
권세와 막강한 능력과 생명력을 가진 말씀으로 마귀의 목을 밟을 수 있고, 교활과 야비와
위선의 눈과 심장을 찔러야 한다.
동시에 마귀들은 호시탐탐 우리의 약점과 죄성의 틈을 이용하고 들어와서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이간질하고 떨어 트려 놓는 짓을 하며, 끊임없이 하느님께 못가도록
방해하고, 괴롭힌다.
때로는 빛의 천사의 탈을 쓰고 나타나 그럴 듯하게 성덕의 길로 인도하는 듯 흉내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각을 드러내며 악령의 열매를 맺게 하고, 온갖 거짓말과 죄로
유인하는 불화살을 쏘며 공격한다.
그리고 마귀들은 우리 인간의 약점과 실수를 가지고, 자신보다 못한 지성과 자유의지의
소유자인 우리 인간들이 천국에 가고 하느님의 천주성에 참여하며, 성령의 은사와
말씀의 도구 역할을 하는 것이 못마땅하고 질투가 나서 수시로 하느님께 우리를
터무니없고 사악한 거짓말로 고발한다.
이러한 마귀들이 쏘는 불화살을 막으려면,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한다고 사도 바오로는 말한다.
이 믿음은 <예수 내 생명의 주님만이 내 결핍된 선을 채워 주시고 악을 제거해
주시리라는 강한 내적 확신의 은혜>이기에, 기도를 통해 이 복음적 믿음의 은사를 구해야만 한다.
동시에 주님께서 어떤 처지와 상황에서도 우리와 동행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는 말씀 공부와 묵상만으로는 부족하고, 첫째도 기도, 둘째도 기도,
셋째도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은총을 얻어 입지 않으면 안된다.
말씀과 성령~말씀과 기도와 성사를 통한 성령의 은총과 도우심 없이는 이 악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영혼의 양식인 말씀과 영혼의 핵인 심령의 양식인 성령이 공급되지 않으면 안된다.
기도와 성사와 안수를 통해 세례와 견진때 받은 성령이 더 충만해지고 활성화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풍요로워지고 충만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악의
세력에게 이기지 못한다.
그러기에 말씀과 성령은 악의 세력과 싸우는 칼(창)과 방패인 것이다.
말씀은 성령의 칼이요, 믿음은 방패인 것이다. 말씀은 성령의 칼이요, 믿음의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므로 방패인 것이다. 말씀은 성령의 칼이요, 그 믿음의 은사, 그 은사를
주시는 성령을 구하는 기도가 방패인 것이다. 결국 말씀은 칼이요, 기도가 방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