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아직은 덥다.
Korea is still hot in history
Osennyaya Pesnya-Anna German (가을의 노래 - 안나 게르만)가사 번역
날씨는 요즘 참 좋다, 맑은 하늘이 드리워진
가을의 청명한 날씨가 되곤 한다.
이제 마음을 잡아서 창가에 앉아 보니 더욱이
필요 이상의 생각이 난무 한다.
Now that I sit at the window and catch my mind, I think more than necessary.
그래서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도 그렇게 자기만의
사고에 마음을 들이게 된다.
참으로 거룩한 것이 요즘 우리 주변에 모든 이들이
기도에 증진을 한다.
그래서 나 만의 기도하는 세계가 아닌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숭배한다.
조금은 나태한 생각을 하다가도 조금씩 나아가는
자신의 기도 생활에 마음을 걸어 본다.
I think a little lazy, but I try to put my mind on my prayer life.
이젠 내일 모레면 추석이라는 명절이 오곤 한다.
동양의 사람이라면 이러한 명절에는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
우리나라에는 크게 추석이라는 명절에 마음들이 모두 같은 거라 본다.
In Korea, I think that all the minds are the same for the holiday called Chuseok.
그래서 지금은 추석단대목이라서 모두가 제사 지내기를 하려 한다.
우리의 전통은 차레를 지내는 것이 일상인데 그래서 모두가 분주한
삶이 되곤 한다.
예전 같으면 예쁜 한복을 입고 여기 저기 인사 다니던 어린시절에
지금도 눈에 아른거려 눈물이 난다.
In the past, when I was a child who was wearing a beautiful hanbok and greeting
here and there, I still have tears in my eyes.
모든거 지난 시절 옛날로 돌아 가고픈 마음이지만 그래서 우리의
추석 명절은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곤 한다.
오늘도 아침에 성당을 가서 미사를 지내는데 난 우리 삐돌이 신부님
미사가 즐겁기만 한데 여기 저기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은 졸고 계신다.
I go to the cathedral this morning and do mass, but I am happy with our pedori priest mass,
but the elderly people who are old here are dozing
여기 저기 살피니 고개 숙이고 잠에 취하곤 한데 우리 삐돌이 신부님의
강론이 오늘도 성경 말씀을 터득하려 한다.
그래서 미사 마치고는 난 율리안나를 데리고 성당 가페에서
차를 마시는데 율리안나 정신적인 마음의 병이 조금 불편한거 같다.
그래서 차를 마시다가 나와서는 집으로 오는데 율리안나 마음이
매우 불편해 보인다.
So I drink tea and come out and come home, and Julianna seems very uncomfortable.
아침에 그러고는 집에 와서는 오늘은 참돔으로 지리탕을 만들어 봤다.
요즘 사람들은 돔 지리를 잘모르는거 같은데 난 강태공 하고 살아 오면서
배운 남은 찌꺼기라 한다. ㅠㅠ
그래서 이젠 나의 불편한 생각을 모두 지우고 그래도 사람이라는
근본의 생활 가운데에 살아 보려 한다.
오늘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피를 흘려 순교하신 이 땅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이다.
순교라고 하는 것은 신앙이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거나 중형을 감내함을 뜻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형벌이 순교자를 만들지 않고 원인이 순교자를 만든다.”라고 하였다.
즉 당하는 고통 그 자체보다는 그 지향하는 바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순교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을 만물 위에 사랑하는
애덕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완전한 신앙의 행동이다. 현 지금의 상황은
우리 선조들이 박해를 받던 그러한 시절은 아니다. 지금의 참된 순교 정신이란
나 자신을,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전히 포기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그래서 참 부활의 기쁨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자세를 말씀하고 계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조건은 바로 수난당하고 돌아가신 스승을 닮는 것이다.
그 한 가지는 “자기 포기”와 “십자가를 받아들임”이다. 자기 포기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귀중한 것이지만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그 귀중한 것을 버리는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의 서원이 바로 그것이다.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만일 나에게 필요 없는 헌신짝을 버리는 것과 같다면
그것은 포기가 아니다. 그냥 필요 없으니까 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한 것이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이지만, 독신으로 하느님을
선택하기 위하여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또 이 자기 포기라는 말은 주님을
따르는데 역행하는 자기를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주님을
철저히 따름으로써 자아를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중심적인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셨고 당신의 영광에 들어가셨듯이 우리 인간은 우리의 십자가
즉 우리 자신이라는 이 십자가를 통하여 나 자신을 완성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하느님과 일치하게 될 것이다.
사실 서로가 꼴찌가 되어 섬겨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확신하는
평신도들의 신앙 감각은 어려운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섬김으로 이룩하는 당신의 직무를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수행하시며,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복음의 힘이 빛나게 하신다.” 그러니 “평신도들은 성사 생활로 그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여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귀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교회헌장, 35항).
또한 사도들을 통해 전해 내려온 예수님의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활성화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첫째, 마음 깊이 진리를 새겨 간직하는
명상과 공부, 둘째 영적인 식별로 실천하며 겪는 체험, 셋째 확고한 진리의
은사를 받은 주교들의 설교”라는 것입니다(계시헌장, 8항).
우리나라 예절- 사람과 예절
이 구사(九思)와 구용(九容)은 단번에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수양을 통해 익혀야 한다. 때문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즉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라고 했다. 또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으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 내지 않으면 도한 군자가 아니랴고 설파하여 사람은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서 팜되고 착하고 아름다워진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인격이 학문과 더불어 발전하는 과정을 일찍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으니 참고하고 노력해 보자.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30세에 몸을 세웠으며 40세에 의혹되지 않았으며 50세에 천명을 알았고 60세에 귀가 화순했으며 70세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어 가지 아니 하였다"(논어(論語))
이것은 인격이 성장 발달하는 진도가 대게 10년을 주기로 도약한다는 사실을 증언함과 동시에 자기 개?u의 노력은 평생 계속되어야 함을 강조한 낸용이다. 사람이 유아기와 어린시기를 보내고 15세의 소년 소녀가 되면 자기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데 뜻을 두고 생각과 행실을 닦아야지 계속 먹을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곤란하다. 요즘은 20세가 되어도 먹을 것만 찾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옛사람들같이 15세가 되면 학문수양 즉 도학에 뜻을 두고 인격을 기르는데 전심전력해야 한다. 사람이 진실로 학문에 열중하면 먹는 것과 입는 것에는 관심이 없게 된다.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면 30세쯤에 입신(立身)을 할 수 있다. 입신이란 자기 자신의 독립 인격체를 확립하는 것이다. 정신적, 사상적, 경제적, 정치적인 모든 영역에서 나름대로 자기의 독립적 시각을 가지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기의 인생관을 확립하는 것으로 뚜렷한 자기 인생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시류에 영합하거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일을 개척한다.
40세에 의혹되지 않는다는 말은 곧 불혹(不惑)인데 세상에 의심스러운 일이나 유혹당할 일이 없어 뚜렷하고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어서 공명정대하게 사업을 경영하고 성공하는 것이다.
50세에 천명을 알았다는 것은 곧 하늘이 나에게 준 사명을 알아서 힘차게 경영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낼 때에는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있어서 보냈으므로 그 일을 완성해야만 자기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하겠다. 깊이 생각해 보면 하늘이 이당에 보낸 이유를... 이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이 집에 효도하라는 뜻이고 이 나라에 태어 난 것은 이 세상에 이바지하라는 뜻이다. 그 사명을 모두 50대에 완성하라는 것이다.
60세에 귀가 화순하다는 이순(耳順)은 이미 늙어서 세대가 교체되는 은퇴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회의 전면에 나서지 말고 듣기만 하는 후견인의 역할만 하라는 뜻이다. 늙은이가 잘 났다고 앞장서서 설치면 젊은이가 창의적인 능력개발을 못하게 된다. 그러면 역사가 정체하여 퇴보한다. 그러나 늙은이는 가급적 듣기만 하고 젊은이에게 위임하고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예법에 70세면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라고 하였으니 70세면 스스로 고상한 자기의 세계를 개척하여 세상 밖에서 놀아야 한다. 그 때에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답답해하고 쓸쓸하게 살면 안 된다. 어차피 인생은 생로병사하게 마련이므로 초연히 살다가 고결하게 죽어야지 그것을 거부하면 천리를 거역하고 인간성을 헤쳐서 추악한 노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나이가 들면 욕심과 이득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우리 동양사회에서는 공자의 이 말씀을 인격발달의 기준으로 삼아서 본받으려고 모두 노력했기 때문에 사람의 나이까지도 이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또는 지명(知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Today, I am spending my da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the Virgin.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Thank you, healthy,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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