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성령께 의존을 할 때

수성구 2021. 6. 22. 02:41

성령께 의존을 할 때

성령께 의존을 할 때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주님께서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 자신을 당신께 맡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태에서도 믿음으로 의지하며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품안에서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

매번 메시지를 보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시는 선물을 골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받으려 합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희망 속에 계시는데

우리는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일까, 반문을 해봅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자식을 위해 잔치를 벌이고 최고의 음식으로

환대를 해주시는 분이신데 그 선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봄이 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새 단장을 하려는 풀잎들이 움트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봄의 생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새싹들의 신비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느님의 선물이 자유롭게 우리 안에 흘러 들어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가파른 산길을 걸어오를 때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지만 정상에 도달하게 되면 악전고투했던 순간이

희열로 뒤바뀌는 흥분을 누려보았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계단도 악전고투의 순간을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계절은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모진 비바람에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지만 극복하는 힘,

때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장애물에 눈물을 흘리며 아파했지만,

그 악전고투를 통해 일어서는 힘을 주시며 그 가치를 알게 하셨습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주신 것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나 기쁠 때마다 이점을 믿고 기억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초월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찮게 여기던 무생물들에게도 고맙다 또는 바보와 같다는 말을 하면

무생물도 변화를 하는데 아버지의 본성을 받은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한마디로 무생물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언어에 반응을 하며 달라지는데

왜, 우리 인간은 극진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비워내지 못하는 욕심이 그렇고 자신 스스로 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늑대 소녀를 발견하고 인간으로 살도록 도움을 주었지만 죽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늑대에게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

늑대의 습성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탄에 양육을 당하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성공여부는 자신의 본성을 찾고 믿고 받아들일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 초월성을 갖게 해주신 하느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가 성령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이 아니고 미완성의 인간이기에 완성으로 가기 위해선

초월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을 가지게 된 정확한 답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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